한국의 난민 여성 실태 종합보고서 '우리 곁의 난민'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장, 난민 여성 7명 인터뷰도 실어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 소피아는 미얀마 소수민족 친족 출신의 중년 여성이다. 고향에서 결혼해 딸 캐롤라인을 낳았으나 남편의 외도 때문에 1년 만에 이혼했다. 미얀마는 불교국가지만 소피아는 목사가 되려고 딸을 친정엄마에게 맡긴 채 필리핀으로 유학해 신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시리우스를 만나 재혼했는데 친족 마을은 외국인 출입을 금지해 세 가족이 모여 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인 목사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남편과 딸 세 식구가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인 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절망에 빠졌다. 이들 가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난민 신청이었다. 당국은 개신교인인 시리우스가 나이지리아로 돌아가면 이슬람교도의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해 난민 바로 아래 단계인 인도적 체류자로 결정했고, 가족결합 원칙에 따라 소피아와 캐롤라인도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2. 러시아 여성 올가는 태국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나이지리아 출신 남자와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눴다. 올가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남자와의 연락은 두절된 상태였다. 올가는 혼혈아 유리를 낳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건 힘겹지만 이들 모자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위협과 모욕에도 시달려야 했다. 견디다 못한 올가 모자는 한국 거주 러시아인 커뮤니티의 주선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아직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3. 아만은 코트디부아르에서 잘나가는 전통무용수였다.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나 약속된 개런티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국에 내전이 일어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공연단 중 아만과 남편 도널드만 한국에 남고 모두 독일로 갔는데, 그들은 모두 난민 인정을 받은 반면 아만 부부는 15년째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만 부부는 인권단체와 난민지원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세 남매는 국적도 없이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4. 시리아에 살던 나디아는 살던 곳이 화염에 휩싸이자 한국과 사업을 펼치던 남편의 동업자 초청으로 입국했다. 한국으로 피란 온 시리아 난민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천20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전 세계 평균 난민인정률 38%는 물론 한국의 난민인정률 3%에도 크게 못 미친다. 시리아 출신에게 난민 심사가 유독 까다롭다는 뜻이며 나디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에도 난민 신청자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2천79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7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1천156명이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합법 체류하고 있다.
여성인권 전문가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장이 우리나라 난민의 실태를 짚어보고 대표적인 사례 7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 '우리 곁의 난민-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를 펴냈다. 서울시의 도시정책종합연구원 서울연구원이 기획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기자, 서울시 여성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낸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자원봉사하던 기관에서 만난 코트디부아르 출신 소년 마뉴엘과의 인연을 계기로 난민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사연을 소개하며 집필 의도를 밝혔다.
전 세계 난민의 역사와 현황, 한국의 난민 신청자 실태, 이중의 박해를 받는 난민 여성의 삶 등을 소개한 뒤 난민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위의 사례 말고도 할례를 거부해 조국을 등진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 히잡의 굴레와 싸우는 파키스탄 출신 신디, 생태운동 공동체 에코팜므에서 희망을 키워가는 콩고 출신의 미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전쟁으로 6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생겨났을 때 유엔이 주도한 구호활동에 선진국은 물론 미얀마, 라이베리아, 이라크, 스리랑카, 시리아 등도 난민 구호에 나섰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나라가 난민 인정과 이주민 포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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