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해외서 찾는다] 코이카 ODA 현장 - ③ 가나

입력 2017-06-13 10:29
수정 2017-06-13 10:38
[일자리 해외서 찾는다] 코이카 ODA 현장 - ③ 가나

시니어 "봉사하며 '인생 2막' 준비", 전문가 "차세대 발판 마련"

경험 전수하며 현지 발전에 기여하는 60대와 40대의 '특별한 도전'

(아크라<가나>=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평생 쌓은 노하우를 현지 청년에게 전수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60대 중반의 봉사단원과,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파견돼 이 나라 농업 발전을 이끄는 40대 후반의 농업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

3개월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시니어 봉사단의 일원으로 가나 땅을 밟은 이후 현지 최대 직업교육장인 아크라직업훈련원에서 유일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광회(65) 단원과 '농민협동조합 역량강화사업'을 총괄 관리하기 위해 2015년 이 나라에 발을 디딘 임장희(48) 프로젝트 매니저(PM).

김 단원은 "가나에서의 3개월은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 남은 1년 9개월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겠다"다고 포부를 밝혔고, 임 매니저는 "국제개발협력은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미래 직업군으로, 개발도상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권했다.

이들에게서 정년퇴직 이후를 고민하는 한국의 시니어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전문가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 "나와 가족 위해 열심히 살았다…여생은 봉사로"

아크라직업훈련원은 1966년 문을 열었다. 현재 16개 학과의 교사 171명이 2천7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이 훈련원에서 기술을 연마한 1만여 명은 이 나라 산업 발전에 근간이 되고 있다. 교사 중 유일한 한국인인 김 단원은 가나와 수교한 지 40년 만에 파견된 첫 KOICA 봉사단원이기도 하다. KOICA는 2011년에 가나 사무소를 개설했다.

김 단원은 전자학과 실습담당 교사로 일한다. 3학년은 5월 말 수료했고, 현재 1∼2학년생 100여 명을 가르친다. 교재가 없어 설명을 길게 해야만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 빼고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김 단원은 가나에 오기 전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은퇴 후 재입사' 샐러리맨이었다. 유한공대 전자과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에서 7년간 전자장비 정비 업무를 담당하다 국토교통부로 이직했다. 공직에서 은퇴한 그는 과거 경력을 인정받아 저가항공사 진에어에 다시 입사했다.

"저가 항공사에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70살까지 근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봉급생활은 내 개인 생활이 아니고 짜진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것이잖아요. 독자적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고, 지금까지는 나와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타인을 위해 살아볼 생각에 KOICA 문을 두드렸습니다. 갑자기 막연하게 봉사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는 뉴욕마라톤을 비롯해 국내외 대회에서 27번 완주했을 정도로 건강관리를 잘해왔다.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하다. 이 나라를 짊어질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오히려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그는 가나에서의 봉사를 밑바탕으로 국내 중·고등학교에서 항공프로그램 관련 교사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살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다.

김 단원은 해외 진출을 꿈꾸는 은퇴자들에게 짧은 경험을 토대로 "나이를 먹으면 노욕이 생기는데 해외봉사를 하려면 이를 내려놓는 것이 제일 처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자식뻘 되는 직원들로부터 통제를 받는데, 이를 언짢게 생각하면 견딜 수 없고 중도에 귀국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 그는 "봉사를 해보니 상대방의 형편도 알게 되고, 내 눈높이가 아니라 상대방 눈높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한국 청년들에게는 지금이 가나 진출의 적기라고 권했다. "이 나라 국민은 대체로 친절하고, 치안은 이웃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됐으며, 비교적 잘사는 형편이어서 한국 청년들이 와서 사업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자동차 정비분야 전문 강사가 부족하고, 정비사와 카센터도 많지 않아 이 부문에 진출하면 좋을 것 같다"며 구체적인 분야까지 추천했다.



◇ "원조시설을 한국 청년 취·창업센터로 활용하자"

임 매니저는 가나의 농민협동조합 조직과 결성, 가치사슬 구축, 조합간 지식공유와 네트워크 확대 등의 역량강화 임무를 맡고 있다. KOICA가 펼치는 '가나 농민협동조합 역량강화 사업'을 총괄한다. 노던, 어퍼이스트, 어퍼웨스트 등 북부 3개 주의 200개 농민협동조합을 관리하고, 오는 2019년까지 618만 달러를 투입해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는 농업 전문가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 농기계과 졸업과 석사과정 이후 농촌진흥청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잠시 에어컨 회사에 취직해 5년간 근무했지만 이 마저 탐탁지 않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시간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컨설팅 회사와 사단법인 한반도발전연구원에서 일하면서 잠시 접었던 농업 분야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멕시코, 이집트 등지의 정책컨설팅을 하면서 개도국 농업 발전을 위해 일했다.

한경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이 나라에 오기 전부터 가나를 알고 있었다. 미시간대에서 공부할 때 가나 친구를 만났고, 그때부터 가나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토론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 남아 있는 친구와도 같은 고민을 하면서 연락하며 지낸다.

그는 사업 관리를 하면서 살펴본 경험 등을 토대로 한국 정부와 젊은이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했다.

"활용도가 낮은 원조시설의 재활용 사업을 추진했으면 합니다. 특히 농촌개발 사업은 면적이 넓어 농업과 유관 기능을 포함한 시설로 리모델링하기에 적합하죠. 농산물 가공 및 유통, 수원국에 이미 진출했거나 관심 있는 우리 제조업체의 입주, 해당 국가에 취·창업을 희망하는 우리 청년들을 위한 교육훈련센터, 한국문화(한류) 확산 등의 복합 기능을 갖춘 복합단지를 개발, 운영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과 청년취업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유·무상 원조사업 가운데 도심지에 근접해 산업 입지여건이 양호하나 사업성과가 미진한 농업, 농촌개발사업과 타 분야의 잠재력을 보유한 대상 지역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우리 기업이 무상 입주, 면세 또는 세금감면, 시설 임차료 감면, 관세 감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현지 정부와의 협상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사업 실행과 관련해서는 더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기존 사업수행 기관에 우선권을 부여하되 예산 규모를 고려해 재분배하고, 국무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대상지 및 사업을 심의한 뒤 각 기관에서 입찰을 통해 수행 업체를 선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 수행 업체의 인력구성에 KOICA, KSP 등의 청년인력 양성 프로그램 경험자를 최소 1인을 포함하도록 권고했다.

그는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가나까지 와서 농사짓는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취업해 농업을 비롯해 교육, 보건 등의 분야에서 일하면 국제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라며 "미래 직업으로서 의미가 있는 일인만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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