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크롱 신당 총선도 '싹쓸이'…대선 이어 또 한번 선거혁명
전후 프랑스 정치 양분해온 공화당·사회당 몰락 예고…정계 대대적 재편 코앞
마크롱 계속 승승장구…총선 압승전망 현실화되자 '일당체제' 우려까지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지난달 7일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 대선 승리 직후만 해도 그가 총선에서까지 과반의 승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았다.
인물 중심 구도의 대선에선 기성정당 후보들보다 참신했던 마크롱이 유리했고, 또 극우세력 집권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몰아 준 유권자가 많았지만, 총선은 대선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치러진 이 날 총선 1차투표에서 마크롱의 신당은 보란 듯이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압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주일 뒤 결선투표가 끝나면 전체 의석의 최대 77%를 신당이 가져갈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들이 나오자 야당들은 일제히 일당체제와 권력독점이 우려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마크롱 집권하자마자 국내외서 존재감 과시…야당 초토화 전략까지 성공
서른아홉의 나이에 선출직 공직 경험이 전혀 없었던 마크롱은 대선 승리 직후만 해도 국정운영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대선 승리의 모멘텀도 금방 꺾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지만, 마크롱은 이런 예상을 뛰어넘어 국내외 정치무대에서 공격적인 행보로 이슈를 주도하는 등 대선 승리의 기운을 이어가며 총선의 '승기'를 잡았다.
특히, '전통의 강호' 중도우파 공화당이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마크롱은 대선 직후 신당 공천과 내각 인선을 통해 총선의 최대 적수였던 공화당을 사실상 '초토화'시켰다. 공천자 명단에 공화당의 거물 알랭 쥐페 전 총리 계열 의원들을 다수 포함한 데 이어, 쥐페의 최측근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지명하며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마크롱과 신당의 예상외의 선전은 마크롱의 저돌적인 스타일과 국정철학이 국내외 정세와 맞물리며 호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마크롱은 취임 직후부터 프랑스 국민과 세계인들로부터 받은 관심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취임 직후 곧바로 유럽연합(EU)의 핵심 파트너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날아가 그동안 EU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개혁논의에 미온적이었던 독일의 개혁 약속을 끌어냈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G7(주요 7개국) 정상외교 무대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문제에서도 그는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제1과제로 내걸고 주요 노동대표들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개별 면담을 하며 설득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사회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참패한 브누아 아몽은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 이어지는 마크롱의 돌풍을 '마크로마니아'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마크롱의 이름에 '마니아'를 합성한 이 신조어는 마크롱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의미한다.
◇역대 총선 중 최대 승리 전망…중도파 중심 혁명수준 정계개편 앞둬
신당이 일주일 뒤 결선투표를 거쳐 여러 여론조사기관의 예측대로 400석 이상을 차지한다면 마크롱은 대선에 이어 또다시 프랑스 정치사를 새로 쓰게 된다.
먼저 신당의 압승은 프랑스 현대 정치 역사상 총선 최대 승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의 가장 큰 승리는 1968년 6월 당시 여당이었던 샤를 드골의 공화국민주연합(UDR)이 전체 의석의 72.6%를 차지한 총선이었다.
드골은 집권 후 소위 '68혁명'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1968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 유권자들의 안정 희구 심리에 힘입어 압승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한 1등 공신인 드골이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는 거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당 앙마르슈의 압승은 2차대전 이후 프랑스 현대정치를 좌·우로 양분해온 사회당과 공화당은 몰락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 계열은 지난 의회 의석 215석에서 절반가량으로 줄어들고, 지난 정부 제1당이었던 사회당 계열은 315석에서 이번 총선 이후 10분의 1 수준으로 몰락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좌·우 노선으로 구분됐던 프랑스 정치는 중도파 중심으로 혁명수준의 재편을 앞두고 있다.
특히 중도좌파 사회당의 몰락은 더욱 극적이다. 20대 때 사회당원이었던데다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마크롱 때문에 존재근거가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창당자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 치러진 1993년 총선에서 직전의 278석에서 56석으로 추락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의 패배가 예상된다.
사회당의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 서기장(당대표)은 출구조사 발표 직후 "좌파 전체의 유례가 없는 후퇴로 기록될 것이며 특히 사회당은 더더욱 그렇다"며 비통해했다.
사회당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4%)까지 떨어지면서 전 정부의 낮은 인기의 악영향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또 이번 총선에서 현역 의원 상당수를 마크롱의 신당에 빼앗기기까지 했다.
기부금이 줄고 의석수 급감에 따라 정부 보조금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라 파리 중심부에 있는 사회당사 매각설도 나오고 있다.
사회당의 중진인 쥘리앙 드레는 "당에 매우 심각한 정치적 위기"라며 "결선투표 이후엔 당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로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공천자 절반이 정치신인…의회의 정부 예속 우려도
이런 가운데 신당의 압승전망이 현실로 나타나자 총선 이후 행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캉바델리 사회당 서기장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렇게 되면 의회에서 민주적 토론이 이뤄질 여지는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공화당의 프랑수아 바루앵 총선대책본부장도 "한 정당에 권력이 집중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당 공천자의 대다수가 정치 신인들이라 새로 구성될 의회가 행정부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마크롱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권을 갈아엎겠다면서 앙마르슈 공천자의 절반을 선출직 공직 경험이 없는 시민사회 출신 전문가들로 채웠다.
정치사학자인 니콜라 루셀리에 박사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대선 한달 뒤 치러지는 총선이 대선 결과를 추인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면서 "신당의 후보들이나 지도부가 총선 캠페인에서 내세운 '대통령에게 다수당을 줘야 한다'는 구호는 특히 매우 낡은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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