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로부대원 부친 기리려"…특전사 찾은 한국계 美 예비역 여군
모니카 스토이 예비역 대위 "6·25전쟁 널리 알릴 것"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아버지는 전쟁 당시 북한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를 만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켈로(KLO·Korea Liaison Officer)부대원이 되셨어요. 평양을 잘 알고, 책임감과 통솔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받아 중대장 직책을 수행하셨고요."
한국계 미국인 모니카 스토이(최혜정·60) 미 육군 예비역 대위는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8년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을 이렇게 회고했다.
스토이 예비역 대위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8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특전사령부의 초청으로 사령부를 방문해 2009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 고(故) 최경진 씨를 기렸다. 이 자리에는 스토이 예비역 대위의 어머니 최혜숙(85) 씨와 남편 팀 스토이(59·미 예비역 중령) 씨도 동행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켈로 부대에 소속돼 북한 지역에서 첩보 수집과 민간인 조종사 구출 임무를 수행했다. 평양 출신으로, 학업을 위해 서울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가 변란을 맞았다.
"제 기억 속 아버지는 켈로부대원으로 조국을 위해 임무를 수행한 일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셨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부모님과 형제를 남겨둔 것에 대해 늘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부친 최씨는 북한군으로 위장해 활동하다가 그를 적군으로 오인한 미군에 체포돼 일주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계급과 군번도 부여받지 못한 비정규군 신분으로 아군과 적군을 넘나들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임무를 수행했다고 딸은 전했다.
켈로 부대는 전쟁 당시 주한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소속으로 오늘날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모체가 된 한국군 최초의 유격군 부대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최경진 씨는 전쟁이 끝나고 사업을 하다 1973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먼 타지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딸은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원래 대학교수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동양인 여군 장교가 돼 이름을 떨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꿈을 항상 크게 꾸라고 하셨어요. 결국,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였죠."
스토이 예비역 대위는 1975년 미 육군으로 임관해 공수부대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1991년 이라크전에 참전했으며 1996년 전역했다.
그는 전역 후 현재 미 3보병사단 전우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참전용사를 기리는 보은 사업을 하고 있다. 201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특수부대 박물관에 켈로부대원들과 미 특수부대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건립자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스토이 예비역 대위는 "젊은 세대는 특히 6·25전쟁을 모른다"며 "미국에서 6·25전쟁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널리 알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6·25전쟁에 참전해 F-84 썬더제트 전투기 조종사로 100회 이상의 작전임무를 수행한 유진 메클링(92) 예비역 대령도 딸과 함께 지난 8일 특전사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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