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넥타이부대' 대원들 "박종철·이한열 죽음에 미안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정 기자 = "6월 항쟁 당시 명동 일대 금융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처음에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말리다 나중에는 동참했습니다. 그들의 시위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은행·보험·증권사 등 65개 금융사 노조로 구성된 사무금융연맹의 김국진 초대위원장(67)은 6월 민주항쟁 30주기를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6월 민중항쟁·사무금융연맹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이 회상했다.
기념식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옛 노조원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김 위원장은 "6월 10일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하다 명동성당으로 쫓겨 들어갔다"며 "노동자들은 농성하는 학생들에게 의약품을 전달하기도 했고 사무실에서 즉석 모금을 해 농성자들에게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을지로 입구∼종로에 많은 금융사가 모여 있었다"며 "은행·투자금융회사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처음에는 대학생들을 말리다가 결국 함께 시위에 동참했던 것"이라고 30년 전을 떠올렸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다닌 '넥타이 부대' 노동자들이 적극 시위에 참여하게 된 데는 1987년 1월 서울대 대학생이었던 박종철 열사(당시 23세)의 죽음이 컸다.
김 위원장은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6월 항쟁을 계기로 각 금융사에서 노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30년 전의 민중항쟁이 있었기에 촛불 혁명의 성공이 있었다고 평했다.
최재호 사무금융노련 초대위원장은 "박종철, 이한열 어린 학생들이 꽃다운 목숨을 던지는 것을 보고 미안했다"며 "사실 대한민국 민주화의 기초는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날은 30년 전 이한열 열사(당시 22세)가 경찰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날이기도 하다.
이날 기념식에는 4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행사 시작에 앞서 6월 항쟁 영상 등을 함께 상영했고, 이들의 항쟁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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