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해외서 찾는다] 코이카 ODA 현장 - ② 라오스
20세 청년여성들 "미용계 평정", 41세 남성 '자동차정비 명장' 목전
주눅들지 않고 한가지 기술로 승부…고졸·전문대 출신의 '당당한 반란'
(비엔티안<라오스>=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는 한국에서 건너와 현지 미용계를 주름잡는 20대 청년여성들과 중년에 접어들어 마침내 자동차 정비 명장이라는 꿈에 바짝 다가선 40대 남성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드림봉사단의 일원으로 이 나라에 발을 디딘 20살 동갑내기 박건양·문혜숙(여) 씨와 KOICA 봉사단원 출신으로 '라오스의 현대'라 불리는 코라오 그룹에서 자동차애프터서비스센터 교육팀장으로 일하는 배용일(41) 씨다. 박 씨와 문 씨는 "10년 뒤 라오스 미용계를 평정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키워가고 있고, 배 씨는 쉼없는 도전과 자기계발로 현지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1인자의 지위를 굳혀가는 중이다.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와 전문대에 그치지만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 "경험 쌓고 봉사 하면서 꿈도 키울 수 있어 좋아요"
박 씨는 광주광역시의 전남공고, 문 씨는 대구광역시 상서고교 3학년 재학 중에 드림봉사단원에 선발돼 같은 날 라오스로 건너왔다. 해외는 이곳이 처음이다. 동갑내기는 8개월째 라오스청년동맹이 운영하는 직업훈련센터 내 미용학과에서 미용기술을 가르친다. 4개월 과정의 교육이어서 벌써 한 기수를 배출했다.
이들은 15∼40살 여성 25명에게 미용을 비롯해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피부미용 등의 기술을 전수하게 된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박 씨에게서 긍정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드림봉사단원에 선발되지 않았다면 또래 아이들처럼 대도시의 미용실을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냈겠죠. 그런데 저는 여기에 왔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어요. 경험도 쌓고, 재능기부로 봉사도 하고, 이곳에 정착해 미용계를 내 손안에 잡아보겠다는 꿈도 키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용기 충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는 1년 연장 근무를 한 뒤 라오스에 정착해 본격 창업할 것이라고 했다 .
차분한 톤으로 말하는 문 씨도 창업을 꿈꾼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도 비엔티안이 아닌 지방에서 봉사하면서 미용실을 내겠다는 것.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머리 손질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란다.
아직은 한국에 있는 부모가 보고 싶어 가끔은 눈물을 흘리고 또 친구들과 SNS를 하며 향수병을 달래는 앳된 나이임에도 이들에게서는 도무지 청년실업의 암울한 그림자를 느낄 수 없다.
"이곳 미용 시장은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부자들의 전유물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누구나 자신만의 헤어스타일을 뽐낼 수 있도록 싼 가격으로 파고들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요. 또 한국 드라마가 이곳에서도 인기가 있으므로 한국 연예인들이 즐기는 헤어스타일을 보급한다면 특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박건양)
"한군데 정착하지 않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한국 미용을 알릴 생각입니다. 이곳은 파마의 경우 1990년대 수준으로 꼬불꼬불합니다. 여러 종류의 파마와 헤어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가령 '태양의 후예'에 나왔던 송중기와 송혜교 스타일을 해주는 것이죠.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문혜숙)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얼떨결에' 건너온 라오스를 '기회의 땅'으로 만든 이들은 미용실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손에 샴푸 독이 올라 있을 후배들에게 "자격증 따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많은 경험을 해라"라고 조언하면서 "꼭 KOICA 드림봉사단원에 응모하라"고 권했다.
이들처럼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기술명장이나 창업을 꿈꾸는 드림봉사단은 단순 노력봉사가 아니라 기술을 전수하는 활동을 한다. 현지 언어를 배우면서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 "공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마라. 자신감 하나면 충분"
전북 익산 태생인 배 팀장은 "공부를 잘하지 못해" 두원공대 자동차공학과로 진학하면서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졸업할 무렵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건너가 1년을 살다가 2002년 월드컵 때 자원봉사를 위해 귀국했다.
그는 당시 심판분과위원장의 전담 운전사로 활동했고 이는 축구 심판 자격증을 따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그는 10년간 대한축구협회에서 치르는 축구 경기의 심판을 봤다.
"심판은 주말에만 봤어요. 평일에는 두원공대 자동차과 실습조교로 나갔고요. 그러다 한국산업대 자동차학과에 편입(2003∼2005년)해 공부도 했죠. 쉬지 않고 계속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중간에 KOICA 일반 봉사단원에 뽑혀 페루(2005∼2007년)에도 갔었죠. 그곳에 가서는 페루판 '폴리텍대학'인 ISTP에서 자동차 실기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국민대 대학원 자동차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2009∼2010년)했고, 전문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2012년 5월 라오스에 왔다. 배 팀장이 일하는 자동차애프터서비스센터는 라오스에서 가장 큰 정비센터로 한꺼번에 100대의 자동차를 손볼 수 있다. 현대, 기아, 코라오 그룹의 자체브랜드 '대한'의 차량을 고치는 정비사 350여 명의 교육을 그가 담당한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 정비라는 기술 하나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어요. 주특기를 발굴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대신 계속 경력을 만들어가야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어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 해요."
배 팀장은 공부를 못하거나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부러워 마세요. 처음에는 화도 나겠지만, 경쟁력만 갖춘다면 더 나아질 수 있어요. 경력을 쌓으면서 야간대학 다니고 여행과 봉사활동도 하면 10년 뒤, 15년 뒤에는 오히려 더 나은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부딪치고, 도전하고 계속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는 사람이 최종 승자입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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