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작가 도진기의 첫 소설집
단편 8편 묶은 '악마의 증명'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판사로 있을 때는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글을 썼습니다. 변호사 일은 주말에도 뛰쳐나가야 할 때가 많아서 소설을 쓰기가 쉽지 않네요. 지금은 의뢰인 사건 처리가 우선이니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소설 쓰는 판사'로 장르문학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 도진기(50)는 올해 초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여 년 법관 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판사의 과중한 업무에도 2010년 데뷔 이후 8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다작해온 작가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소설쓰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고 했다.
작가가 최근 첫 소설집 '악마의 증명'(비채)을 냈다. 그동안 다른 작가들과 함께 발표한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을 포함해 모두 8편이 실렸다. 정통 추리소설부터 미스터리·오컬트까지 아우른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법리싸움에 무게를 둔 추리소설들이 우선 눈길을 끈다. 추리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고 처음 완성했다는 표제작 '악마의 증명'은 법률가로서 지식과 경험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살인 혐의를 받는 법대생 박철은 자신이 일란성 쌍둥이인 점을 이용해 치밀한 전략을 짠다. 일단 범행을 시인한 뒤 재판에서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것. '증거의 왕'이라는 자백으로 보강수사를 부실하게 만들고 나서 진술을 뒤집어 빠져나가겠다는 것이다.
물증이라고는 얼굴이 찍힌 CCTV 화면 정도다. 재판에서는 똑 닮은 형이 증인으로 나와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고 동생은 사건 당시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다.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고 CCTV 화면만으로 유죄는 어림도 없다.
"CCTV는 얼굴을 비춰줌으로써 범행의 강력한 증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의심의 증거가 되어주었다. 이 모든 증거를 모아봤자 기껏해야 범인은 형과 나 둘 중의 하나라는, 50퍼센트 확률의 입증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박철의 무죄 판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검사 호연정은 이번엔 형 박성을 같은 혐의로 기소한다. 이미 박철을 기소할 때부터 그의 전략을 훤히 들여다본 호연정은 일사부재리 원칙을 통쾌하게 빠져나간다.
호연정은 '선택'에서 변호사로 변신해 교통사고 보험금 소송을 맡는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메스로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는 외과의사의 사건이다. 세밀한 사건현장 묘사와 함께 변호사의 예상 밖 인간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맨 마지막에 실린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친구와 그의 애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유홍석의 이야기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김지환 부장판사가 처음부터 등장한다. 여기서 독자는 작가의 경험에 기반한 법정공방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은 신내림 받은 여자의 오싹하고 괴기스러운 기운과 피칠갑이 난무하는 오컬트 스릴러다.
법원에서 직접 처리하는 사건을 소재로 삼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소설의 소재로 쓰기에 적합한 사건은 거의 없고 직업윤리에도 맞지 않는단다. 오히려 신문기사나 소설책에서 모티프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가는 "이번 단편집을 출간하며 작가 생활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352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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