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코미 증언 '본방사수' 열풍…"스릴만점 진짜 리얼리티쇼"

입력 2017-06-08 16:27
美 코미 증언 '본방사수' 열풍…"스릴만점 진짜 리얼리티쇼"

회사는 회의 일정 취소하고 학교에선 증언 토론 수업…"공휴일 선포" 주장도

트럼프의 실시간 트윗 가능성도 큰 흥행 요소…"트윗 날릴 때마다 공짜 술" 술집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요즘엔 미국인 사이에 생각이 일치하는 일이 별로 없지만 8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한국시각 8일 오후 11시)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똑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본방사수'를 하게 된다"



수천만의 이목을 집중시킬 이 프로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연루 의혹과 관련, 사전 공개된 증언록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폭탄급 타격을 안겼다는 평을 듣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국장의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증언 생중계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저지의 홍보관련 회사인 에버그린 파트너스는 직원들의 증언 시청을 위해 모든 회사 일정을 비워뒀다. 8일 오전 직원들이 지켜야 할 업무 수칙은 '코미가 증언하는 동안 고객과 상담 금지'뿐이다.

"본방 사수를 위해 그 시간대 회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는 이 회사 사장 카렌 케슬러는 60인치 대형 화면 옆에 다과도 준비해둘 생각이다.

처음엔 워싱턴 수도권 일대에서만 관심을 끌 것으로 보였던 코미의 증언이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진짜 리얼리티 쇼' 중 스릴 만점의 장면이 될 것으로 예상되자 미국의 모든 전국 방송망과 유선방송망은 시청률이 급상승할 것을 기대하며 이 청문회를 생중계키로 했다.

방송사들이 코미의 증언 내용에 더해 기대하는 것은 수천만 시청자 중에 끼어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소감을 날려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코미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은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공휴일로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면서, 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시청 열기를 방불하는 사례들도 전했다.

워싱턴의 한 스포츠 바(술을 마시면서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술집)는 코미의 증언에 흥분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날릴 때마다 손님들에게 맥주나 위스키 한 잔씩을 무료로 돌리기로 했다.

이 술집 매니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20번 트윗하면 20번 무료 제공한다고 무제한임을 강조하면서 청문회 시청용 화면 18개와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띄울 대형 화면의 작동을 시험하고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매니저는 "직장인들이 청문회 시청을 위해 하루나 반일 휴가를 낸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며 "나도 보통의 직장을 다닌다면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6년 이란-콘트라 사건과 관련, 국가안보국 소속 올리버 노스 중령의 의회 청문회 때 한 방송사가 집계한 시청자는 5천500만 명.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ABC 방송의 의학 일일연속극 '종합병원'(General Hospital)시청자보다 5배 가까이 많았다.

재미없기로 유명한 의회 청문회 중계를 위해 수익성 좋은 오전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일이 드문 방송사들이 이번에 코미 증언 생중계에 달려든 것은 흥행 잠재력을 본 것이다.

물론 미국민 모두가 코미 청문회에 관심 있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에서 2천200km 떨어진 휴스턴에 있는 제대 군인들이 모이는 작은 술집에서 만난 한 예비역 해군 장교는 청문회 중계를 보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나중에 전문가들 토론이나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그는 "코미는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것일 뿐"이라며 "새로 폭로할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 술집 지배인은 청문회 생중계 방송을 아마 켜놓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청문회 시청 열풍은 학교에도 불고 있다.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 있는 퀸스 오처드 고등학교의 교사 조슈아 슈먼은 자신이 맡은 1학년 학급에서 청문회 증언 내용을 놓고 토론 수업을 할 예정이다.

지난 수주 간 학생들이 코미의 증언에 관해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대부분,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고 슈먼은 말했다.

슈먼은 뉴욕타임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지금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범상한 일은 아니며, '왕좌의 게임' 같은 실제의 정치 스릴러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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