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왔지만 흙먼지 풀풀"…찔끔 비에 타들어가는 농심(종합)
"빗물이 땅속 깊이 스며들지 않았고 개울물 변화도 없어"
(전국종합=연합뉴스) "6월 중순으로 접어드는데 모를 심은 논보다 심지 않은 논이 더 많습니다. 가뭄이 너무 심해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틀째 비가 내린 7일 충남 홍성군 천수만 간척농지(A지구)에서 벼농사를 짓는 최진기(68)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충남 서북부지역을 비롯한 전국에 전날부터 비가 내렸지만, 양이 너무 적어 극심한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비가 이렇게 감질나게 와서는 해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강원 춘천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민병규(61)씨도 모처럼 비가 내렸지만, 가뭄으로 탄 속을 달래주지 못했다.
민씨는 "비가 내리지 않은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 정도의 비로는 해갈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빗물이 땅속 깊이 스며들 정도가 아닌 데다 개울물의 변화도 전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삽으로 땅을 파보자 지표면에서 2∼3㎝가량만 젖었을 뿐 그 밑으로는 비가 오기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조금만 땅을 헤치자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민씨는 올해 밭 5천㎡에 감자를 심었지만, 가뭄으로 감자가 크지 않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수확철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는 "진작 비가 왔어야 하는데 이번 비는 너무 늦었다"며 "가뭄이 심해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에 옥수수를 심은 농가가 많은데 가뭄 때문에 옥수수가 크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내린 비의 양은 평균 15mm 안팎이다.
제주 산간지방에는 140mm가 넘는 많은 비가 쏟아졌고, 서울과 남해안 일부에도 2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그러나 가뭄이 극심했던 충남 서북부지역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선 10mm 안팎에 그치면서 바짝 마른 지표면을 살짝 적시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충남 서부지역에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보령댐 저수율도 변화 없이 9.7%를 유지하고 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저수율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전남 무안 간척농지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성도(46)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휴경농으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는 길만이 유일한 생존책이라고 했다.
지난달 심은 모는 가뭄 탓에 손끝으로 비비면 바스러질 정도로 말라버렸다.
그는 '자신의 농경지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달 말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논을 갈아엎고 모내기할 농기계에 들어갈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농업재해보험금이라도 건지려고 다시 모내기할 수도 없는 처지"라며 "휴경농 보상금이 나온다 하더라도 생계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지표면을 살짝 적실 정도로 찔끔 내린 비지만, 일부 농민들은 오랜만에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모를 낸 논의 물꼬를 손질하거나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 죽은 밭작물을 다시 심으며 분주한 손길을 놀렸다.
농민들은 앞으로 100㎜가량의 비가 더 내려야 가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비가 내렸다고 해서 쉽게 저수율이 늘지 않는다"며 "땅으로 흡수된 강우가 저수지로 유입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려 비가 내렸다고 해서 저수율이 즉각 개선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해용 박철홍 김광호 한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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