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해외서 찾는다] 코이카 ODA 현장 - ① 캄보디아
현지 청년인턴들 "지금이 진출 적기…취업은 물론 창업도 가능"
"나를 찾는 시간이자 터닝포인트…해외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
<※ 편집자 주 =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지시'로 하달했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지난 4월 현재 청년 실업률은 11.2%로,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해외에서도 일정 부분 찾을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공적개발원조(ODA) 활동을 벌이는 캄보디아, 라오스, 가나, 르완다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4개국을 찾아 현지 청년 인턴이나 국제기구 등에 취업한 젊은이들을 발굴해 소개합니다. 이들이 들려주는 현지 적응 과정과 생생한 경험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비전 등은 고용절벽을 마주한 국내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놈펜<캄보디아>=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인천국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공항까지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다. KTX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니 따지고 보면 그리 먼 나라도 아니다.
인구 1천600만 명의 이 나라는 지금,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2007년 고용허가제에 따라 E9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인은 2016년 현재 4만8천200명을 넘는다. 이미 귀국한 근로자 7천600명과 그 가족(4인 기준)까지 합하면 2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국민이 한국을 직접 체험했거나 알고 있다.
또한 지난 1991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KOICA의 초청 연수를 통해 한국을 찾은 연수자는 2천251명이나 된다. KOICA의 초청 연수는 육체노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을 포함한 이 나라 지도자들이 한국의 성장 경험을 배워가는 방식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류도 빠른 속도로 확산해 이 나라 TV에서는 언제든 한국 드라마나 K-팝을 만날 수 있다. 여기가 한국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정도면 한국의 캄보디아 진출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은 셈이다. 마음만 먹으면 현지 취업은 물론 창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한인은 아직 6천 명에 그치고 있다.
KOICA 캄보디아 사무소에서 만난 청년 인턴들은 "지금이 캄보디아에서 취업이나 창업하기에 적기"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하면서 자신들도 인턴이 끝나는대로 정착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 인턴은 KOICA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적개발원조(ODA) 전문인력 양성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ODA 영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의 수혜자이다. KOICA가 해외사무소를 설치한 42개국에 파견돼 일하고 있으며, 근무 기간은 7개월이다.
인턴 기간의 업무는 '보조적' 성격의 일이다. 그럼에도 캄보디아에서 만난 청년 인턴들은 일자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국내의 또래 청년들과는 차원이 약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시야를 바깥으로 돌리면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읽혔다.
다음은 현지에서 만난 5명이 '내게 해외인턴이란…'이라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 박설리(여·26) = 캄보디아 KOICA 사무소 근무는 가장 '나답게' 살게 해준다. 한국에서는 부모님, 친구, 가족 등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여기 오고 나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산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욕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 속에는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가장 나다워 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한국에서 일을 구하고, 가족이랑 어떻게든 붙어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해외에 나와 생활하면서 그런 좁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어 울렁증'도 해소됐다. 한국에서는 영어가 안 돼 외국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됐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이제는 주제 토론도 가능해졌다. 한국인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기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속이면서 두려워한다. 영어의 벽을 넘으니 어디서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항 출신으로 한동대 국제어문학부를 졸업하고 6개월 동안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가 KOICA에 관심을 두고 캄보디아에 왔다.>
▲ 김영인(여·26) = 해외인턴은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한 통로로 만날 수 있는 창구(窓口)다. 전에 주한미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살았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여러 스펙트럼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판단력도 깊어진 것 같다. 해외에 기회가 더 많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급박함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를 생각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한국이라는 우물이 아닌 '글로벌 시민'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앞으로 KOICA나 국제기구, 다른 원조기관에 진출해 일을 더할 계획이다. 다시 캄보디아에 나오면 더 좋다.<※ 이화여대 방송영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캄보디아가 두 번째다. 대학 재학시절 2주 동안 보육원에서 봉사하고 돌아갔다가 좋았던 기억 때문에 다시 인턴 근무를 지원했다.>
▲ 주현서(여·25) = 캄보디아 생활은 '전환점'이다. 여기 오기 전에는 친구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기업에 취업하고, 좋은 남편감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잘 기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내 또래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그런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서 살려고 했다면 지금부터는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늦게 안 것이다. 한마디로 '눈높이'가 수정됐다고 할 수 있다. 해외에 나오지 않았으면 누군가가 마련해준 눈높이대로 살았을지 모른다. 또 하나 얻은 성과라면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균관대 프랑스어문학과를 졸업하고 공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다 해외인턴에 끌려 이곳에 왔다. 직장을 잡아 일하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책임을 덜 질 수 있는 나이에 한번 가보는 하는 마음으로 결행했다고 했다.>
▲ 송병주(25) = KOICA 인턴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이면서 자양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자 주변에서는 관련 공무원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나의 길을 그렇게 정해놓고 있었고, 나도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길'로 잘 들어섰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의 1년 경험은 한국에서 한 10년 경험과 맞먹는다고 비교할 수 있다. 앞으로 좀 더 배우고 경험한 뒤 국제개발협력과 국제구호 분야에서 일할 것이다. KOICA의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상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 이지인(여·27) = 캄보디아에서의 짧은 근무는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 기회였다고 본다. 남들처럼 똑같은, 그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좀 더 특별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기회도 마련했다. 분명 지금 이 시간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의 생활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국에 갇혀서 사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을 나와보면 안다. 한국인은 아주 똑똑하고 일을 잘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대단한 장점이다. 지금, 해외에 나갈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다. 즉시 도전하라.<※ 가천대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KOICA가 진행하는 '국제개발협력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ODA를 알았고, 차근차근 배우고 싶어 지원했다. 앞으로 ODA와 관련한 연구를 추가해 전문가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ghw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