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제주' 고병원성 AI에 왜 뚫렸나…원인은 '부실 방역체계'

입력 2017-06-05 18:01
'청정 제주' 고병원성 AI에 왜 뚫렸나…원인은 '부실 방역체계'

폐사축 제때 신고 않는 농가 안이함도 큰 문제

반입 가금류 검역증명서 등 제도적 보완 필요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가축 질병 청정지역이었던 제주도마저 끝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뚫렸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5일 오후 제주시 이호동에 사는 A씨가 신고한 오골계와 토종닭 폐사축에서 고병원성 H5N8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최종 발표했다.

A씨는 지난달 27일 제주시 오일시장에서 오골계 5마리를 산 뒤 다음날 모두 폐사하고 5일 뒤인 지난 2일 자신의 기르던 토종닭 3마리가 추가로 폐사하자 제주시 축산과에 신고했다.

A씨가 산 오골계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S농장과 상귀리 B농장이 지난 26일 전북 군산에 있는 C씨의 농장에서 들여온 것이다.

현재까지 A씨 집과 S농장, B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3㎞ 이내 방역대에 있는 14농가의 가금류 1만445마리와 오일시장을 통해 유통된 오골계 등이 살처분됐다.

이번에 제주로 유입된 고병원성 AI은 지난달 25일 오후 6시 50분 제주항에 도착한 카페리를 이용해 들어온 오골계를 통해 유입됐다. 군산 농장의 차량에 실려 온 오골계 1천마리는 다음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S농장과 상귀리 B농장에 각각 500마리씩 입식 됐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는 군산 C씨 농장이다. 검역본부의 역학조사 과정에서 군산 농장에서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미 고병원성 AI 의심 사례가 발생했다. 이전까지 하루 2∼3씩 폐사하다 갑자기 20∼30마리씩 폐사했다. 수의사 진료를 통해 항생제 등을 처방하고 나서도 28일까지 계속해서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농가는 방역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제주는 물론 경기도 파주와 경남 양산으로 오골계를 팔아넘겼다.

이 과정을 보면 군산 농가의 안이함이 제주 농가로 고병원성 AI가 유입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군산 농가가 의심 사례를 방역 당국에 신고하고 정확한 검사를 받았더라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의 방역체계도 문제다. 도는 기본적으로 AI가 발생한 지역의 가금류 반입을 금지하고, AI가 발생하지 않은 지역의 가금류에 대해 반입을 허용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지난달 13일 전국적으로 가금류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되자 도 역시 반입 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사실 S농장과 B농장은 절차에 따라 제주항에 설치한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방역상황실에 반입 신고를 하고, 차량 등에 대해 소독까지 하고 오골계를 들여왔을 뿐이다.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되지 않았더라도 사전에 반입 신고를 하고 나서 원산지증명서와 사업허가증, 소독 필증 등의 서류를 제출하고 소독을 완료하면 반입이 가능하다. 방역관이 반입되는 가금류를 임상관찰 한다고 하지만 AI를 잡아낼 방법은 아니다.

이 같은 방역체계는 AI가 발생해 통제되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유용하다. 그러나 이번처럼 AI 발생 농장이나 지역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는 무용지물이다.

반입되는 가금류의 실제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검역을 증명하는 제도가 요구된다. 단순히 방역 인력을 조금 더 늘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 축산물이나 수산물을 수입하려면 해당 국가의 공식기관이 발행한 검역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처럼 국경 검역 수준의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사태는 앞으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농가의 안이함과 부실한 방역체계로 인해 발생한 인재인 셈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날 오전 AI 관련 비상대책회의에서 ""앞으로 축산, 먹거리에 대한 제주의 청정지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엄격한 위생 기준에 의한 검역 필증이 있을 때만 받아들이는 제도와 기준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에 대한 기구 강화와 인력 확보, 운영 매뉴얼에 대한 정비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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