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1초만에 초고속 생산…LG 의류가전 생산라인을 가다
140m 제조라인, 40년새 생산량 10배로…모듈화·자동화로 혁신
1만회 도어 개폐, 저온·고온 시험 등 혹독한 검증
(창원=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이 1년에 500만대인데 부품 창고는 고작 이게 전부입니다. 대형물은 30분어치의 분량만 갖고 있어요. 중형물은 2시간, 소형물은 4시간 단위로 입고됩니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남 창원시 LG전자 창원2공장 A1동 내부의 '단출한' 창고를 소개하는 정나라 리빙어플라이언스제조팀 차장의 말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A1동은 전자동세탁기, 드럼세탁기, 의류건조기 등 LG전자의 의류가전 생산을 담당하는 곳이다.
부품을 들여와 조립, 검사까지 마친 후 포장해 출고하는 모든 과정이 이뤄진다.
1976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40여 년간 공장 크기는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생산량은 연 50만대에서 연 500만대로 10배 늘었다. 모든 제품이 11초 만에 만들어진다.
1시간이면 창고에 꽉 찰 정도이지만, 쌓아둘 틈도 없이 바로 출고된다.
배송을 위해 하루에 들어오는 물류 차만 5t 트럭 950대 분량이다. 쭉 늘어놓으면 이 공장에서 창원대로를 꽉 채울 정도라고 한다.
'11초의 비결'은 자동화·모듈화이다.
"중간에 무인운반기가 움직이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정 차장이 주의를 줬다. 그의 말대로 곳곳에 정해진 레일을 따라 무인 로봇이 작은 부품들을 나르고 있다. 도어, 상판 등은 SPS(부품자동공급설비)로 이동한다. 공중에선 20m 길이의 트롤리로 무겁고 부피가 큰 부품을 나른다. 지하터널을 통해서도 부품을 공급한다고 한다.
그는 "작업자들이 불필요한 행동을 많이 하면 11초에 한 대씩 생산할 수가 없다"며 "부품을 집기 위해 허리를 굽히거나 몸을 돌리지 않아도 되도록 부품을 손 앞에까지 갖다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조라인 입구에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몸체인 '캐비닛(Cabinet)'을 접는 자동화 장비가 있다. 이 설비는 평면으로 펼쳐져 있는 스테인리스 캐비닛을 1초도 안 돼 'ㄷ'자 모양으로 접는다.
LG전자는 최근 2년간 자동화 설비에 투자해왔다. 의류가전 제조 라인의 자동화율은 60%대에 달한다.
정 차장은 "고용 유지 등의 문제를 고려해 자동화 수준을 조정하고 있다"며 "자동화 과정은 위험하거나 중량물을 다루는 작업에 우선 적용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가전업계 최초로 2005년 세탁기 제품에 '모듈러 디자인'을 적용했다. 세탁기, 건조기 등에 들어가는 모듈을 3∼4개로 통일했다.
어떤 모델이든 같은 부품을 사용하도록 해 레고블록처럼 맞춰 쓰면 된다. 이는 개발비, 부품비 등을 낮춰 원가 절감으로 이어진다.
A1동 뒤로는 제품 성능을 책임지는 '신뢰성 시험동'이 있다.
생산 제품이 내구성 기준을 만족하는지 연구원들이 시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조성화 LG전자 세탁기개발품질보증팀 차장은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출시하지 말라는 것이 CEO(최고경영자)의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여기서 '가혹한' 시험을 견딘 제품이어야 시장에 나갈 수 있다.
'철컥철컥', '쿵 쿵'…. 내부에 가득한 거센 소음이 그 정도를 말해준다.
세탁기 도어(문)를 끊임없이 여닫아 1만 번을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다. 도어를 여닫는 각도도 상하로, 좌우로 바꾸고 각도도 조정한다.
소비자가 옷감을 넣을 때 힘을 준다는 점을 고려, 위에서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도 시험이 이뤄진다.
최소 30가지 종류의 옷감을 무게를 달리해 시험한다. 두껍고 무거운 고무, 모래포대도 넣어 아주 빠른 속도로 돌린다. 세탁기 진동체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온도 조건도 달리 시험해 전 세계 어디에서 사용해도 품질에 변화가 없는지 확인한다.
열대기후의 사용환경을 고려한 실험실 문을 열자 고온·고습의 공기에 숨이 턱 막혀온다. 반대편 저온 실험실에선 냉기가 흐른다.
조 차장은 "한번 들어오면 보통 1∼3개월, 길게는 6개월, 어떤 제품은 '죽을 때까지' 시험을 계속한다"며 "그렇게 25년간 쌓인 정보는 개발에 좋은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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