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새 지나간 여우비…거북등 들녘 갈증만 더해

입력 2017-06-01 10:35
수정 2017-06-01 11:00
눈 깜짝할 새 지나간 여우비…거북등 들녘 갈증만 더해

바싹 말라붙은 밭…메추리알 크기 감자 성장 멎어

소방차 급수에도 쩍쩍 갈라진 논바닥 표도 안 나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얼마나 기다렸던 비 소식인데…, 눈 깜짝할 사이 몇 방울 뿌린 게 전부네요. 목마른 땅에 갈증만 더해주는 꼴이지 뭡니까"





충북 옥천군 청성면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김인수(61)씨는 1일 바싹 말라붙은 밭고랑에 풀썩 주저앉아 무심하리만큼 쾌청한 하늘을 원망했다.

모처럼의 비 소식에 누렇게 타들어 가는 감자밭이 생기를 되찾기를 기대했는데, 야속한 여우비는 오는 둥 마는 둥 그의 애간장만 태우면서 허무하게 지나갔다.

전날부터 이 지역에는 요란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1.2㎜의 비가 내렸다. 5㎜ 가까이 내린 곳이 있는 반면, 그가 사는 마을에는 강수량 측정조차 불가능한 소나기만 살짝 지나갔다.

3천㎡의 감자 농사를 짓는 그는 해마다 절기상 하지(夏至)가 되면 감자 수확에 나선다. 토질 좋은 황토밭에서 재배되는 그의 감자는 씨알 굵고 맛 좋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푸석푸석 말라붙은 땅에서는 감자 줄기가 누렇게 말라죽고, 한창 살이 붙어야 할 감자도 메추리 알만한 크기에서 성장을 멈췄다.





다급한 마음에 논바닥의 물까지 퍼 올려 뿌려주지만, 바싹 말라붙은 밭은 시간이 갈수록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김씨는 "40년 넘게 농사짓지만, 올해처럼 지독한 가뭄은 처음"이라며 "며칠 더 뙤약볕이 이어지면 수확을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걱정했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이 지역 3대 수원지로 꼽히는 장연저수지가 있다. 사시사철 수량이 넘쳐나던 곳인데, 올해는 극심한 가뭄 탓에 저수율이 31.8%까지 내려앉았다.

저수지 물이 흘러내리는 하천은 먼지만 풀풀 날리는 사막이 된 지 오래고, 물 공급을 받지 못한 논바닥은 지진이 난 것처럼 쩍쩍 갈라져 어린 모가 말라죽고 있다.

보다 못한 청산면사무소는 사흘 전부터 소방차까지 동원해 생명수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잔뜩 메마른 논바닥이 스폰지처럼 물을 빨아들이고 있어 말라죽은 모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하다.



김두용 청성면 산업팀장은 "6t짜리 소방차로 연신 물을 퍼다가 뿌려줘도 바싹 마른 논바닥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며 "아직 모를 심지 못한 논도 3㏊가 넘는다"고 걱정했다.

인근에서 마늘농사를 짓는 육심복(66)씨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누렇게 타들어 가는 마늘밭에 물을 대는 작업을 하다가 어깨 인대가 파열돼 병원 신세를 지는 중이다.

육씨는 "하천물을 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2단 양수작업을 하다가 어깨에 무리가 갔다"며 "하는 수 없이 객지 사는 자식들을 불러 덜 영근 마늘을 수확했다"고 말했다.

가뭄이 극심해지면서 옥천군은 읍·면사무소에 상황실을 설치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행정기관이 보유한 양수기 308대를 가뭄현장에 지원하고, 소방서 도움을 받아 비상급수에도 나서고 있다. 1억7천만원의 예비비를 풀어 하천 바닥에 웅덩이를 파는 등 수원확보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밭작물에서 논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라며 "장마가 시작될 때까지 가뭄극복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이 지역에 내린 비는 139㎜로 지난해 같은 기간(301㎜)의 46%에 불과하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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