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프로듀스101'이 뭐길래

입력 2017-06-01 09:00
수정 2017-06-01 09:40
[윤고은의 참새방앗간] '프로듀스101'이 뭐길래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가수를 놓고 팬들끼리 충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에는 '스잔'의 김승진과 '현아'의 박혜성 팬들이 부딪혔고, 1990년대에는 아이돌 그룹 1세대 H.O.T와 젝스키스의 팬들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우리 오빠들'을 향한 팬심은 언제나 뜨거웠고, 소녀 시절 한때의 추억이 평생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 성시원도 '토니 오빠'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한 시절을 불태웠다. 성시원이 성인이 돼서는 그 에너지를 삶의 강한 엔진으로 전환해 나가는 모습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세상이 과격해져서인지, 팬심도 과격해지는 듯 하다. 어떤 일에서든 '과격'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안티팬들의 악의적인 루머 유포와 여론 조작으로 목숨을 걸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 누군가의 꿈이 짓밟히고 좌절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제발 끝까지 자세히 읽어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절박하고 절절하다. '악의적인 루머'와 '여론 조작'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크게 보인다. 사실이라면 '범죄'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민이나 기아 어린이, 인권이 유린당한 반체제 인사의 구명을 위한 호소문이 아니다. 엠넷의 보이그룹 선발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의 출연자를 구명하기 위한 외침이다.

비슷한 내용의 이메일을 하루에만 스무 통을 받았다. 어떤 기자는 하루에 50통도 넘게 받았단다. 매일 이메일을 보내는 주체와 내용이 다르다. 언론사의 '기사제보'란에도 '프로듀스101' 도전자들과 관련된 '호소문'과 '제보'가 답지하고 있다.

'광풍'의 현장이다.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100m 떨어져 있어도 화상을 입을 태세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지지가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데 시비 걸 이유는 없다. 가슴을 데우는 정열과 꿈이 사라진 시대에 뭐라도 붙잡고 열정을 불태운다니 반갑기까지 하다.

문제는 선을 넘어섰을 때다. 팬들끼리의 충돌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격해졌다. 언어폭력·욕설이 도를 넘어섰고, '거짓말'도 버젓이 유포하는 양상이다. 투표를 위해 남의 아이디를 도용하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다른 이에 대한 무시무시한 배척과 비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응원하는 대상에게 선물 공세, 투표 공세를 펼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이쯤 되면 잠시 두꺼비집을 내리고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화재의 위험이 크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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