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구제역 '평시 방역' 전환…140일간 공습에 농가 만신창이
AI 383건 발생으로 3천787만 마리 살처분, 구제역도 9건에 1천392마리 매몰
연례화·규모화 심화…사육주체·제도·행정당국 방역체계 전면 점검해야
(무안=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축산농가를 덮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사실상 종식 단계에 접어들면서 다음 달 1일부터 방역체계가 평시 수준으로 전환한다.
가축전염병 공습 종식이 아닌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휴지상태라는 지적 속에 이번 가축전염병 사태는 역대 최악의 피해 규모와 함께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31일 전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6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140일간 50개 시·군에서 383건의 AI가 발생해 946 농가, 3천787만 마리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2014년 1∼7월 195일간 1천936만 마리 살처분 기록을 훨씬 뛰어넘어 단일 지속기간 기준으로 사상 최악의 피해가 발생했다.
H5N6형(343건)이 전국적으로 창궐한 데 이어 H5N8형(40건)이 시차를 두고 확산했다.
살처분 보상금, 생계소득 안정 지원금, 입식 융자 등 수습에 투입해야 할 국비만 2천56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제역은 지난 2월 5∼13일 보은(7건), 연천(1건), 정읍(1건) 등지에서 발생해 21 농가, 소 1천392마리가 매몰됐다.
다행히 조기에 진정됐지만, 이례적으로 O형과 A형이 함께 발생해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다.
AI와 구제역 모두 두 가지 유형이 동시 발발한 셈이다.
올해 가축전염병 확산 과정에서도 당국의 허술한 대응과 일부 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처방의 전제가 되어야 할 진단이 명확하지 않았다.
당국은 AI 발생 때마다 철새에 의한 감염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을 내세웠지만, 철새 도래지와 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농장 간 수평감염으로 보기도 어려운 곳에서도 AI가 상당수 발생했다.
구제역 발생 원인도 해외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됐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AI 방역과정에서는 소독제가 효능이 떨어지거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구제역 백신도 '물 백신' 논란에 시달렸다.
당국은 구제역 항체 형성률 90%대를 자신했지만, 농가별 혈액 검사에서는 10%대로 확인되기도 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면 농가의 책임 있는 차단 방역이 최우선이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사례도 있었다.
일부 농장에서는 방역 담당 공무원의 진입을 거부하는가 하면 지난해 12월 세종시 한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서는 AI 의심 신고를 하기 직전 달걀 280여 만개와 닭 10여만 마리를 출하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축산계열화 사업자의 방역 강화 방안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치단체들은 계열화 농장에서 잇따라 AI가 발생하는 데 착안해 축산계열화 사업자 방역 강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계열화 사업을 신고에서 등록제로 변경하고 방역책임을 명시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AI 발생 시 살처분 비용을 사업자에 부담하도록 하고 지속해서 발생하면 시장·군수가 사육제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도 제시돼 법령 개정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 관계자는 "일반 농가, 계열 농장·회사 등 사육주체별로 책임방역을 강화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며 "제도적 미비점은 오는 10월 안에 국회에 상정돼 보완될 것으로 보이고 행정에서도 발생 즉시 심각 단계로 대응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제역·AI 특별방역을 종료하고 6월 1일부터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두 단계 아래인 관심으로 하향한다.
위기 경보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네 단계로 나뉜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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