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도 아닌데"…韓라면 터키서 1개 3천원 넘는 '귀한 몸'
韓업계 "유난히 엄한 GMO 규제 탓 수출 중단"…우연히 섞인 극미량도 불허
"장류 등 다른 식품도 비슷한 처지"…터키 '식품 한류' 무풍지대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이스탄불에 사는 50대 터키인 주부 벤귀 쉬하즈씨는 최근 한국인 친구가 선물한 인스턴트 라면을 먹고 그 맛에 홀딱 반해 집 주변 대형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찾았다.
동남아시아산은 다양했지만 정작 한국 제품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마트 어디서도 한국 라면은 보이지 않았다.
쉬하즈씨는 친구에게 한국 라면을 구할 방법을 묻고는, "한국 라면이 다른 제품보다 훨씬 나은데 왜 터키에서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한국 인스턴트 라면은 세계 100여 국가로 수출하는 대표 '한류' 식품이다.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시베리아 한복판에서도, 지구 최남단 푼타 아레나스에서도 다양한 인종·국적의 소비자에게 한국 라면이 팔린다.
그러나 '형제 나라'라고도 하는 인구 8천만 터키에서는 시중에서 한국 라면을 사실상 찾을 수 없다.
'할랄 라면'이 이미 제품화돼 아랍에미리트나 말레이시아 같은 이슬람국가로도 수출되고 있어 종교가 장벽이 되는 것도 아니다.
터키인은 고춧가루를 즐겨 매운맛에도 익숙하다.
한국 업계가 이런 잠재력 큰 시장을 손 놓고 있는 이유는 터키정부의 유전자변형작물(GMO) 규제 때문이다.
농심이나 삼양 같은 국내 굴지 업체는 라면에 GMO 원료를 쓰지 않는다.
문제는 나라마다 비(非)GMO를 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GMO가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재배·유통되는 탓에 비GMO 작물이라 하더라도 통관이나 하역, 운송, 가공 중에 GMO 작물이 의도치 않게 섞일 수 있다.
한국은 '비의도적 혼입' 허용 기준을 3%로 운영한다. 일본은 5%로 우리보다 관대하고, 유럽은 0.9%로 훨씬 엄하다. 일반적으로 생태주의운동이나 소비자운동이 강한 나라일수록 이 기준이 엄한 편이다.
또 미국을 제외한 농업 강국도 비의도적 혼입 허용 기준이 까다롭다. 값싼 미국산 작물로부터 자국 농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GMO 규제가 단순히 안전·생태 보호 수단이 아니라 '비관세 장벽'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농산물 수출국인 터키는 이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가 '0%'다.
한국 기업이 비GMO 원료로 생산한 제품이어도 극미량의 GMO가 의도치 않게 섞였다면 터키 당국의 검사에서 'GMO 식품'으로 판정될 수 있다.
GMO 검사법은 민감도가 아주 좋아 콩 한 자루 속 한 톨 비율로 섞여도 '양성'으로 감지한다.
만약 터키 식품당국의 검사에서 한국산 라면이 GMO 양성 판정이 나면 현지 제품을 회수·반송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시장에서까지 알려져 'GMO 라면' 오명을 쓸 우려도 있다.
국내 한 라면 업체는 GMO 규제 탓에 2014년 터키 수출을 중단했다.
비의도적 혼입에 깐깐한 유럽 수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한국 라면이 터키의 높은 장벽을 못 넘은 것이다.
면류나 장류 등 다른 한국식품 기업들도 같은 이유로 터키 유통에 발목이 잡혔다는 게 식품업계의 설명이다.
'식품 한류'가 불 여건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터키 식품안전당국의 감시가 느슨한 소규모 수입상 등이 소량으로 들여오는 제품이 한인 식품점을 통해 제한적으로 유통될 뿐이다.
대량 유통이 아니니 가격도 인근 나라보다 훨씬 비싸다.
인스턴트 라면 1개가 2.8∼3.0달러(3천200∼3천400원)에 팔린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도 1개 1천500원꼴인 것과 비교하면 터키에서 한국 라면 체감 가격은 '후덜덜'한 수준이다.
터키 한인들은 "그나마 한국 라면을 살 수 있는 게 어디냐"며 기꺼이 이 값을 지불한다.
국내 한 식품 업체의 관계자는 3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터키에 한국 가공식품을 본격적으로 수출할 수 있느냐 여부는 개별 기업이나 업계에서 풀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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