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미세혈관 파고드는 '혈관염'…"빠른 발견이 관건"

입력 2017-05-31 07:00
[명의에게 묻다] 미세혈관 파고드는 '혈관염'…"빠른 발견이 관건"

작은 혈관에 발생할수록 발견 어려워 치료 시기 놓치기 십상

적기에 약물로 치료하면 재발 막고, 증상 완화 가능

(서울=연합뉴스) 이상원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 혈관염은 평소 우리 몸을 지키는 정상 면역이 도리어 신체를 공격하면서 혈관 벽에 염증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혈관과 연결된 피부, 장기 등 신체조직까지 손상되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원인은 유전이나 감염, 약물, 악성종양 등으로 다양하다.

만약 고열, 관절통, 피로, 단백뇨 등의 흔한 증상부터 혈뇨와 객혈 등의 심각한 증상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거나 악화한다면 혈관염이 근본 원인일 수 있다. 특히 모세혈관을 포함한 작은 혈관에 발생하는 혈관염은 발견도 어렵고 위험성도 높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 병을 키우기 쉽다.

혈관염은 주로 염증이 침범한 혈관의 크기에 따라 큰 혈관, 중간 크기 혈관, 작은 혈관에 생기는 혈관염으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세부적으로 혈관 침범 정도에 따라 29가지의 혈관염으로 나뉜다.

큰 혈관에 발생하는 혈관염으로는 타카야수동맥염이 대표적이다.

인구 100만명당 1.2∼2.6명의 발생 빈도를 보이는 이 질환은 미국·유럽보다 한국 등 동양에 흔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중간 크기 혈관염에는 결절다발동맥염, 가와사키병 등이 포함된다.

작은 혈관에서 발생하는 혈관염으로는 항호중구세포질항체(ANCA) 연관 혈관염이 대표적이다.

면역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ANCA라는 항체가 면역 세포인 호중구를 활성화해 혈관 벽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ANCA 연관 혈관염에는 현미경다발혈관염, 베게너육아종증으로 알려진 육아종증다발혈관염, 척스트라우스증후군으로 불리는 호산구육아종증다발혈관염 등 세 가지 질환이 있다.

우리나라 ANCA 연관 혈관염 환자의 발생 빈도는 조사된 바가 없지만, 2000∼2017년 사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만 153명이 이 질환으로 진단된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다.

미세한 혈관에서 소리 없이 생기는 이 병은 혈관염 중에서도 악명이 높다.



우선 발견 자체가 어려워 중증으로 진행된 후에야 진단받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큰 혈관에 생기는 혈관염이나 중간 크기 혈관의 혈관염은 혈관조영술이나 전산화단층촬영(CT) 등의 검사를 받다가 눈에 띄는 경우도 있지만 ANCA 연관 혈관염은 단일 진단 검사로 발병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ANCA 혈액검사, 혈뇨와 단백뇨를 확인하는 소변검사, CT나 양전자 단층촬영(PET)검사를 포함한 영상검사, 침범 장기의 조직검사까지 거쳐야 확진할 수 있다.

큰 혈관이나 중간 크기 혈관을 침범하는 혈관염보다 특징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빠른 진단과 치료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ANCA 연관 혈관염은 발생 부위에 따라 다양한 이상으로 발현된다. 고열, 권태감, 근육통, 관절통, 체중감소 등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이상이 전신에 나타난다. 피부에 영향을 미치면 발진이나 궤양, 괴사가 생길 수 있고, 점막에는 구강궤양, 성기궤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에는 포도막염, 공막염 등이 생길 수 있으며, 귀와 코, 인후에는 부비동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심혈관계로 염증이 침범하면 부정맥, 심부전, 협심증이 나타날 수 있다. 신경계를 침범하는 경우에는 뇌수막염, 간질발작, 뇌졸중, 척수염 등으로 이어진다.

작은 크기 혈관이 많이 분포한 장기인 폐와 콩팥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도 ANCA 연관 혈관염이 무서운 이유다. 폐에 ANCA 연관 혈관염이 침범할 경우 결절이나 동공이 발생할 수 있고, 흉막에 물이 차는 흉막염도 생긴다.

심각한 경우 객혈도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적시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소지가 있다. 신장에 염증이 생길 경우 혈뇨와 단백뇨가 검출되는데, 방치하면 신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투석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아 예방보다는 최대한 빠른 질환 발견과 치료가 최선이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증상이 오랫동안 지속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질환 발견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면에서도 환자 상태가 혈관염이 의심된다면 검사를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 환자(60세)의 경우 부비동염(축농증)으로 3년간 치료를 받은 뒤 폐렴으로 항생제 투약을 받으며 고생하다가 의료진의 권유로 검사를 받고 ANCA 연관 혈관염으로 확진됐다. 이 환자는 그제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희귀 난치성 질환이지만 늦지 않게 치료를 시작하면 치료 후 재발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거나, 증상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치료는 주로 약물을 통해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약물은 일명 스테로이드로 알려진 부신피질호르몬이다. 강력한 항염증 효과가 있어 초기 치료에 꼭 포함되고, 상당 기간 유지요법으로도 사용된다.

초기 치료에 사용되는 면역억제제로는 항암제로 알려진 싸이클로포스파마이드가 대표적이다. 주로 주요 장기 침범이 있는 심각한 환자에게 적용하는데, 가벼운 증상만 보이는 환자는 메토트렉세이트나 아자치오프린을 초기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임파선암 치료에 사용되는 리툭시맙이 싸이클로포스파마이드를 대체하고 있어 싸이클로포스파마이드의 합병증 위험을 줄여가고 있다. 초기 치료 후 환자의 약 90%는 증상이 호전되고, 약 70%는 혈관염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관해 상태에 도달한다.

하지만 관해 상태에 있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은 최소 한 번 이상 재발을 경험하기 때문에 초기 치료 이후 유지 치료를 최소 1∼2년 시행한다. 유지 치료에는 비교적 합병증이 적은 메토트렉세이트와 아자치오프린이 사용된다.

ANCA 연관 혈관염이 난치성 질환이기는 하지만 관해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심각한 합병증의 예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환자들이 질병을 잘 이해하고,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잘 먹는다면 합병증과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 이상원 교수는 2000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 대학에서 ANCA 연관 혈관염에 대한 기초연구와 임상연구를 수행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류마티스학회 젊은 연구자상, LG[003550] 미래의학자상 수상, 대한류마티스학회 젊은 연구자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우현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류마티스학회 교육수련위원회 위원, 대한류마티스학회 홍보위원회 위원,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제4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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