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女피고인 2차공판 출석…"몰래카메라인 줄"(종합)
재판부, 사건 민감성 고려해 상급법원으로 사건 이첩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 혐의로 기소된 동남아 출신 여성 피고인들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30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팡 법원에서 진행됐다.
세팡 법원은 이날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의 사건을 병합해 샤알람 고등법원으로 이첩했다.
세팡 법원은 지방법원(Magistrates' Court)으로 민사사건과 금고 이하의 형사사건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어서, 살인사건을 다루는 상급법원으로 사건을 넘긴 것이다.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될 다음 재판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현지 검찰 관계자는 한 달 내에 향후 일정이 통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성 피고인들은 이날도 방탄복을 걸친 채 삼엄한 경비 속에 법정에 출석했다.
이들은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두 피고인이 살해 의도를 갖고 범행했다면서 지난 3월 1일 살인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들은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았을 뿐이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이와 관련, 두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법정에서 말레이시아 검찰과 경찰이 암살 장면이 담긴 공항 CCTV 영상과 김정남의 부검 보고서 등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남아 현지에선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 내 억류 자국민을 귀환시키려고 북한 정권과 타협을 하는 바람에 '깃털'에 불과한 여성 피고인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여론이 일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여성에게 VX 신경작용제를 넘겨준 오종길, 리지현, 리재남, 홍송학 등 북한 국적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에 숨어 있던 나머지 북한인 용의자들도 3월 말 전원 출국이 허용됐다.
북한에 억류된 말레이시아인 외교관과 가족을 전원 송환하는 조건으로 김정남의 시신과 북한인 용의자들의 신병을 넘긴 것이다.
이 중에는 시티 아이샤를 포섭한 인물로 알려진 북한 국적자 리지우(일명 제임스·30)도 포함됐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정부는 해당 여성이 범행도구로 이용됐다면서 말레이시아 측에 선처를 요구했다.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달 28일 필리핀에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 만나 "피고가 (진짜 범인들에게) 이용, 조종당했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말레이시아 인니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법정에서 기자들을 만나 "시티 아이샤가 최근 가족들에게 '너무 걱정 말고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내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팡 법원에는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이 선임한 현지 변호사도 출석해 재판 과정을 참관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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