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냉장고를 만들었다고?…과학에 가린 공학의 재발견
신간 '공학을 생각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현대물리학의 선구자인 아인슈타인이 초기 냉장고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던 발명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뒤인 1926년 부탄을 냉매로 이용한 비기계식 냉장고를 개발해 독일 특허를 받았고, 나중에 영어권 국가들에서도 특허를 취득했다. 독일 가전회사인 AEG에서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프레온을 사용하는 기계식 냉장고에 밀려 상용화되진 못했다.
신간 '공학을 생각한다'(반니 펴냄)는 발명가로서 아인슈타인의 이력처럼 과학(science) 뒤에 가려져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공학(engineering)의 역할과 의미를 조명한다.
아인슈타인은 냉장고 외에도 펌프, 카메라 등에 관한 열댓 가지의 특허를 유럽 각국에서 취득했다고 하니 발명가로서의 포부도 컸던가 보다.
저자이자 세계적인 공학자인 헨리 페트로스키 미국 듀크대 교수는 과학과 공학이 상호 보완·협력하는 관계지만 명백히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과학자의 임무가 문제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공학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에서 과학은 연구를, 공학은 개발을 담당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문명을 이루고 실생활에 쓰이는 많은 기술과 기기, 시설들이 과학 그 자체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공학이라는 별도의 창조적 과정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책은 공학적 문제 해결에 과학이 응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공학이 과학에서 직접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많은 기술의 진보가 순수한 공학적 업적에서 비롯됐고 과학 이론은 사후에 덧붙여졌다. 컴퓨터와 같은 공학적 도구의 발명이 과학의 발전을 자극하기도 했다.
증기기관은 열역학이 정립되기 전에 이미 사용됐고 그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열역학으로 결실을 보았다. 마르코니는 물리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선 통신을 거듭된 실험을 통해 발명했으며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나중에 나왔다.
라이트 형제는 항공역학의 도움 없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항공역학은 동력 비행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진 뒤에야 발전했다. 로켓과학도 로켓의 설계와 성공적인 비행이 이뤄진 뒤에야 탄생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네트워크도 역시 공학이 과학에 선행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는 물론 냉전 시대 소련의 인공위성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미국이 진행한 아폴로 계획도 엄밀히 말해 과학적 노력이라기보다는 공학적 노력의 결과라고 책은 설명한다.
심지어 현대 실험물리학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를 이용한 힉스 입자의 발견도 수천 명의 공학자가 참여한 공학적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책은 그런데도 순수 학문보다 실용적인 학문을 백안시하는 통념 때문에 공학은 과학에 가린 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환경 파괴나 기후 변화, 언제 닥쳐올지 모를 소행성의 충돌과 같은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선 과학과 공학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관건은 과학자나 공학자가 파국적인 사건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지식과 기술의 전 영역에서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인지 여부다."
박중서 옮김. 400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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