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시장 '이상 과열 조짐' 왜 이러나
재건축 촉발 상승세 서울 전역으로 확산…"매물 없어 못 팔아"
새정부 규제 계획 '아직' 없고 공급 부족 불안감도 한 몫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요즘 집주인들이 집을 안 팔려고 해요.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전화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매물을 거둬들입니다. 대선 이후 호가도 매주 2천만∼3천만원씩 뛰는데 물건이 없어요." (개포동 개포 주공1단지 N공인 대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적용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난달 거래가 거의 없었는데 대통령 선거 이후 갑자기 매수세가 급격히 늘었어요. 앞으로 재건축 부담금을 내야 할 거라고 경고해도 날개 돋친 듯 팔립니다. 공인중개사인 제가 봐도 이상할 정도예요."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J공인 대표)
서울 아파트 시장이 심상찮다. 사업 추진이 빠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된 강세가 대선 이후에는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받게 될 사업 초기의 재건축 단지와 일반아파트로 상승세가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규제 대못'을 쳤던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새 정부를 만들면서 주택시장이 움츠러들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 "집값 더 오른다" 매물 회수…전방위 상승세에 계약 포기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대선 이후 가파른 상승세다. 28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30% 올랐다.
이는 지난해 10월7일(0.32%) 이후 7개월 반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2주 전에도 7개월 만에 최대치인 0.24%가 올랐다. 통상 비수기로 꼽히는 5월의 아파트 가격치고는 꽤 높은 상승세다. 작년 5월 주간상승률(0.11∼0.13%)의 2∼3배 수준이다.
거래도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7일 기준 8천490건으로 이미 지난달 거래량(7천824건)을 넘어섰다. 주택 거래가 활발했던 지난해 5월 거래량(1만163건)과 맞먹을 기세다.
오는 7월 이주가 시작되는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는 요즘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 할 정도다.
이 아파트는 대선 이후 보름 만에 5천만원 이상 상승했지만 부르는 게 값이다. 매수자가 나타나면 집주인이 도망가는 형국이다.
둔촌동 S공인 대표는 "매수자가 있어서 전화하면 처음엔 팔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1천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해 황당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집주인이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 계약 직전에 거래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7월중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도 대선 이후 3천만∼4천만원이 더 올랐는데도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
이 아파트 42㎡는 11억1천만원이던 것이 현재 11억5천만원으로 상승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이 유력해지면서 지난달 거래가 급감했던 사업 초기의 재건축 단지들도 대선 이후 거래가 살아나고 있다.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는 지난달 전체적으로 9건이 거래됐는데 이달 들어선 26일까지 벌써 26건이 팔렸다. 현지 중개업소에선 "호재가 없는데 팔리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J공인 사장은 "초과이익환수제 때문에 지난달 가격이 하락하고 쌓여있던 매물이 대선 이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며 "혹시 재건축 부담금을 내게 되더라도 강남권 요지의 아파트를 사두는 게 낫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윳돈에다 전세를 끼고 4억∼5억원의 대출을 받아 구매하는 투자수요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정비계획조차 통과하지 못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최근 거래가 부쩍 살아나는 모습이다.
이 아파트 113㎡는 올해 초 가격이 13억2천만∼13억3천만원까지 떨어졌으나 최근 거래가 늘면서 로열층의 경우 13억5천만∼13억7천만원까지 상승했다.
일반 아파트값은 강남·북을 가리지 않고 초강세다.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 116㎡는 올해 들어 1억원 이상 오르면서 현재 호가가 15억∼17억원을 넘어섰다. 래미안반포퍼스티지 114㎡는 호가가 18억∼19억원에 달한다.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반포 112∼114㎡의 경우 한강이 안 보이는 주택형은 19억∼20억원, 한강이 보이는 주택형은 23억∼24억원이다.
서초구 반포동 D중개업소 대표는 "매물은 귀한데 들어오려는 수요자들은 넘치고 있어 무서울 정도"라며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중산층의 심리가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 아파트 공급 줄어든다"…불안심리가 상승 부추겨
이처럼 서울 아파트 시장이 초강세인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매수심리가 회복된 것이 일차적인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움츠려있던 매수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은 물론 취임 이후에도 보유세 인상 등과 같은 부동산 규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강북의 뉴타운 해제지역 인근 등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을 호재로 보고 호가를 더 올리는 모습이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부동산 규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규제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서 매수심리가 회복된 모습"이라며 "특별한 규제가 없다면 올해 새 아파트 입주 물량도 적어도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부활하면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도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으로 재건축 사업 중단돼 단기적으로는 사업 추진 초기의 아파트값이 하락하겠지만 재건축 중단으로 신규 공급도 감소해 4∼5년 뒤에는 또다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도곡스타PB센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 초기 단계의 재건축 사업이 중단되고 앞으로 5년 뒤 수도권 2시 신도시 입주까지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경기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도 차츰 소화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수급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참여정부 때 집값이 크게 올랐으니 문재인 정부에서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치른 참여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78.9% 폭등했다. 참여정부가 2005년 내놓은 8·31부동산 대책 등을 통해 종합부동산세·분양가 상한제·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주택거래신고제 등 강력한 규제를 내놨지만 그 효과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에야 나타난 것이다.
당분간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작고, 최근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며 급등하고 있는 것도 부동산 시장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펀드나 주식에서 차익을 실현한 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부동산수석위원은 "현재 5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전세를 끼고 일부는 임대를 놓는 '갭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며 "최근 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연 5%대 이하로 낮은 것도 주택 구매수요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새 정부, 대출 규제·보유세 강화 등 조기 대책 내놓을까 '촉각'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값이 계속해서 상승할 경우 정부가 규제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재건축 아파트값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분양권 전매제한 등 '맞춤형 규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 사항인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강화하고 가계대출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총량관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이 제도가 시행되면 구매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
참여정부 때처럼 보유세 강화 등과 같은 강력한 규제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우리은행 안명숙 고객자문센터장은 "아직 국토교통부 장·차관 등 정부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부동산 관련 정책도 제대로 발표되지 않았다"며 "현 정부는 특히 부동산 과열을 두고 보지 않을 공산이 커 투자자들도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