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이 짜낸 미세먼지 해법은 '사대문 내 노후차량 제한'(종합)

입력 2017-05-27 19:23
3천명이 짜낸 미세먼지 해법은 '사대문 내 노후차량 제한'(종합)

광화문광장서 대규모 야외 토론회…'식물 열기구 띄우자' 어린이 의견도

사대문 안 차량 제한 79.3% 찬성…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88.9% 찬성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시민이 짜낸 혜안은 '사대문 내 노후 차량 진입 제한'이었다.

토요일인 27일 오후 서울 도심 광화문광장에서 3천 명에 달하는 시민이 2시간에 걸쳐 토론한 뒤 투표한 결과 참가자 79.3%가 이에 찬성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서울시가 야심 차게 마련한 '미세먼지 대토론회'다. 야외에서 이 정도 인파가 한꺼번에 머리를 맞댄 것은 국내에서는 최초다.

광화문광장에는 일찌감치 검은 천을 덮은 테이블 250여 개가 늘어섰고, 자리마다 파란 선캡을 쓴 시민이 빼곡히 앉았다.

오후 5시부터 원탁별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과 '도심 내 미세먼지 배출원에 대한 대응방안'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주요 의제로는 ▲ 차량 제한 ▲ 도심 미세먼지 배출시설 점검 ▲ 석탄화력발전소 중단 ▲ 국가 간 다각적 기후 대화 채널 확보 등이 올라왔다.

3천 명의 시민이 쏟아내는 의견이 카테고리에 따라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차량 운행 제한과 친환경 이동수단 이용률 높이기'가 30%를 웃돌 정도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시민이 가장 주목한 미세먼지 해법이 바로 도심 차량 운행 줄이기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시민은 "서울 시내에서 미세먼지를 낮추려면 교통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동차가 다니기 불편한 도시가 돼야 한다"며 "서울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등록된 자동차 수는 늘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시민도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각자가 자가용 운전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며 "노후 경유차도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 주요 의제를 찬반 투표에 부친 결과도 맥락을 같이했다.

'도심 사대문 안 공행차량 운행 제한'을 두고 참가자의 47.7%가 '매우 찬성', 31.6%가 '찬성'이라고 답해 찬성이 79.3%에 이르렀다.

'미세먼지 고농도 발생 시 차량 2부제 실시'를 두고도 '매우 찬성'과 '찬성'을 합한 비율이 80.1%에 달했고, '봄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적 가동 중단' 역시 찬성이 88.9%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는 시가 이미 시가 이미 한양도성 내부 16.7㎢를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하고 비슷한 내용의 정책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후 경유차나 관광버스 외에도 일반 승용차까지 한양도성 내 진·출입을 관리하고, 필요하면 통행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도 무대 앞쪽 테이블에 앉아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박 시장은 "시민이 힙을 합쳐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기 질 문제, 맑은 공기를 가지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며 "여러분의 열정을 목격하면서 이제 광장의 민주주의가 또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야말로 광장의 민주주의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참석해 "서울에서 생태 공간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학교"라며 "서울 시내 1천300개 학교 모두가 옥상에 생태 정원을 꾸미면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는 관련 학회·시민단체·자치구·교육청 등에서 온 각양각색의 시민이 참여했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잡은 부모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13살 난 아들과 함께 온 최양희(41·여)씨는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아야 하는데 요즘은 봄에 아이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며 "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기도 해서 국가나 시 차원에서 관련 대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한 어린이 참가자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서해안에 공기 정화 식물을 심은 열기구를 띄우자"며 통통 튀는 의견을 내놔 박수갈채를 받았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박명하 씨는 "미세먼지 필터 창을 달았는데도 실내 공기 질이 똑같이 나쁘더라"며 "주변국과의 외교적 고려를 하는 큰 그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시는 사전에 안전을 위해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방향 교통을 전면 차단했고, '미세먼지를 마시며 미세먼지를 토론하는' 일이 없도록 마스크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줬다.

참가자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따져보고 정리하는 '팩트체크팀'과 '분석팀' 50여 명도 투입됐다. 이들은 시민 의견을 재빠르게 정리해 스크린에 띄워, 참가자들이 다시 이를 보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왔다.

한편, 시가 토론회를 앞두고 10∼25일 사전 신청자 1천59명을 대상으로 시민 아이디어를 모집한 결과, 1천272건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교통 분야가 268건으로 가장 많았고, 시민 건강 179건·제도 개선 175건·소통 홍보 124건·산업 108건·외교 100건·생활 환경 84건 등으로 각각 집계됐다.

시는 '미세먼지 대토론회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이 가운데 제안 빈도, 추진 가능성 등을 따져 우수 아이디어 100가지를 선정했다.

여기에는 ▲ 차량 부제·사대문 안 차량 진입 금지·통학버스 경유 차종 제한 등 교통 분야 ▲ 취약계층 마스크 지원·녹지 대폭 확충·공공장소 황사용 마스크 비치 등 시민 건강 분야 ▲ 중국과 한국 기업이 미세먼지 감축 공동 개발·충남과 수도권 공동대응 모색 등 외부협력 분야 ▲ '쿨 루프' 시공 확대 등 산업 분야 등이 포함됐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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