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110년 전으로…정동에 '신문물' 꽃폈다

입력 2017-05-26 20:49
타임머신 타고 110년 전으로…정동에 '신문물' 꽃폈다

서울 중구 '정동야행' 축제…'근대 문화' 이색 콘셉트에 인파 북적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찬란한 금빛 성화를 뒤로 하고 예배당 안에는 힘 있는 성악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란히 놓인 아치 사이로 울리는 한음 한음이 마치 어느 성자의 발자국처럼 경건하게 들렸다.

이 곳은 유럽 어느 성당이 아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성공회 서울주교 좌성당이다. 26∼27일 양일간 서울 중구 주최로 열릴 '정동야행' 축제의 하나로 예배당을 공개하고, 무료 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이 성당은 따뜻한 느낌이 드는 오렌지색 지붕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아치형 복도, 종탑을 곁들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926년 지어졌다. 이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초저녁부터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26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봄과 가을 한해 두 차례씩 열리는 정동야행 축제는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지난해 가을에는 14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찾았고, 구는 이번에는 15만 명을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축제의 '메인 스트리트' 격인 정동 덕수궁 돌담길에는 이른 오후부터 인파로 넘실댔다.

자녀 손을 꼭 잡고 걷는 가족부터, 나이 지긋한 노부부, 한복을 차려입고 '깡충깡충' 뛰는 학생까지 모두가 손에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들고 즐거워했다. 돌담길 한 켠에는 높이 1m가 되지 않는 적당한 높이의 무대가 설치돼 마임, 마술, 어쿠스틱, 알앤비 공연 등을 선보였다.

그 맞은편 돌담에는 시간에 따라 보라, 자주, 파랑, 노랑 조명이 번갈아가며 색깔을 입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동야행은 무엇보다 '근대'를 콘셉트로 삼아 정동 일대에 흩어진 각종 근대 건물·문화유적을 돌아다니며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맞춰 거리에는 1900년 초 시대상을 담은 체험 부스가 죽 늘어섰다.

대한제국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을 재현한 부스는 시민의 사연을 접수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지나가던 나이 든 외국인 관광객은 신기한 듯 이를 보고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김소월·나도향·주시경 등 정동 배재학당 출신 문인을 소개하는 부스도 마련됐고,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문양' 전등을 만들어보는 코너도 손님을 맞았다.

특히 1902년 정동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 '손탁호텔' 로비를 재현한 포토존에는 일찌감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길게 줄을 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 문물이 아직은 낯설었을 20세기 초, 벽안의 숙박객이 차를 생경한 광경을 그려 넣었다.

지난해에 이어 정동야행을 보러 경기도 의정부에서 어린 두 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최은정(44)씨도 마찬가지로 포토존 앞에 줄을 섰다. 그는 당시 학생들이 썼을 검은색 교복 모자를 눌러 쓴 채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드는 딸을 보고 마냥 즐거워했다.



최씨는 "지난해 축제가 괜찮았기에 올해도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인 두 딸과 왔다"며 "아이들이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옛날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축제 백미는 역시 평소 가보지 못하는 정동 일대의 숨은 명소들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개 행사다.

이번 축제에서도 '도심 속 고요한 섬'과 같은 성공회성가수녀원을 비롯해 캐나다대사관, 미국대사관저, 덕수궁 석조전(연장 개방) 등이 문을 연다.

이날 오후 금난새가 지휘하는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비롯해 음악극 '천변살롱', 파이프 오르간 연주, 캐나다산 소고기 시식회, 그림자극 '정동에 떨어진 호랑이' 등 다양한 공연과 체험 행사가 마련됐다.

서울 성동구에서 온 박모(31)씨는 "한복과 한지로 꾸민 부스가 개화기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며 "흔히 접할 수 없는 데이트코스라는 생각에 지난해에 이어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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