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어린이 고통 어쩌나…'잃어버린 세대'는 진행형
기념비적 보고서 발간 20주년…"어린이 형편 악화" 주장도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20년 전인 1997년 5월 26일, 호주에서는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자녀 강제 분리정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정책은 동화정책의 하나로 원주민 자녀를 강제로 부모들로부터 떼어놓아 정부시설에 수용하거나 백인가정에 입양시킨 것으로, 아이들은 농장에서, 혹은 가정부로 일하거나 이름 없이 번호로만 불리는 등 큰 고통을 겪었다.
당시 피해자와 가족, 지원단체 등 각계의 요구로 호주 정부 위촉을 받아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는 2년 작업 끝에 '그들을 집으로'(Bringing Them Home)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원주민 자녀 강제분리에 대해 광범위하게 소개한 뒤 호주 정부의 행위가 "종족 근절" 혹은 "인륜을 어긴 범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호주 각계에서는 보고서가 나온 날을 '쏘리 데이'(Sorry Day)로 부르며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s)로 불린다.
하지만 지금도 원주민 어린이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들의 사정은 전보다 나빠졌다며 "또 다른 잃어버린 세대"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호주 공영 ABC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당시 보고서의 주요 권고사항들은 이행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많은 원주민 아이는 가정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집 밖 양육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원주민 어린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에게서 떨어지게 될 가능성은 비원주민 또래들보다 약 9배에 이르며, 약 1만5천 명의 원주민 어린이가 정부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원주민 어린이들은 20년 전에는 정부 아동 보호시설 이용자의 약 20%를 차지했으나, 현재는 3명 중 1명꼴이 됐다.
야당인 녹색당의 레이첼 시워트는 "믿을 수 없는 상황 전개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도둑맞은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며 연방정부에 신속한 대책을 주문했다.
멜버른 대학의 세라 매디슨 교수는 20년 전의 보고서가 내놓은 54개 권고사항 중 단지 한정된 수만 이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주 연방정부는 이같은 주장에 펄쩍 뛰었다.
사회서비스부의 제드 세셀야 차관은 "오늘날의 시스템과 20년 전에 끝난 정책들을 연결짓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무지에서 나온 녹색당의 논평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세셀야 차관은 또 "학대의 분명한 증거가 있지만, 원주민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일을 종종 매우 자제하고 있다"며 "아이가 학대받거나 방치되면 원주민이든 비원주민이든 가릴 것 없이 정부는 조처할 책임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원주민 어린이 강제 분리정책의 피해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정부의 지원이 미흡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공영 SBS 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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