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해법] 獨 사회안전망 강화·英 최저임금대상 확대로 보완
佛 비정규직 차별 적었으나 뒤늦게 노동 유연성 확대…노동계 반발
스위스·네덜란드, 정규직·비정규직 동등대우…갈등 '제로' 수준
(베를린·런던·파리·제네바·브뤼셀=연합뉴스) 고형규 황정우 김용래 이광철 김병수 특파원 = 유럽 주요국 역시 비정규직 해법은 난제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노동을 동반한 비정규직 증가가 '도전'으로 나타난 지 오래인 가운데 각국은 제각기 현실에 맞는 다양한 '응전'에 나서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유연화한 독일과 영국은 각각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하거나 최저임금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막을 강화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크지 않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가진 프랑스는 실업률을 낮추려고 노동시장 대수술로 유연화를 시도하고 있다.
스위스는 세계 최강 수준의 중소기업을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고통이 거의 없다. 네덜란드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거의 없어 노동자들이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보인다.
◇ 독일, 정규직전환 대신 비정규직보호 사회안전망 '두텁게'
400만 실업인구를 줄이려는 목적의 2002년 8월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
2000년 601만 명이던 비정규직이 2010년 794만5천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15년 현재 753만4천 명을 기록했다.
비정규(비전형·atypisch)직은 기간제, 주20시간 이하 노동제, 월 450유로 미니잡 등 일정급여 이하 주변노동제, 아르바이트 노동자이다.
이런 추세속에서 비정규직은 고통을 호소했고, 독일 당국 역시 대안 마련에 나섰다.
과거 하르츠 개혁을 주도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이번 총선 모토를 '더 많은 공정(정의)'으로 정하고 실업급여(ALGⅠ) 지급기간 확대를 공약했다. 임금 공정성 확보차원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 성과급과 퇴직금의 상한선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마르틴 슐츠 사민당 당수 겸 총리후보는 35년간 사회보험료를 내며 일한 노동자가 은퇴후 연금이 기초생활 보장수준을 넘을 수 있도록 개혁하고 단기계약노동 역시 축소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사민당을 파트너 삼아 대연정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도 친기업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과 더불어 세금감면 정책을 편다.
독일의 대연정은 2015년 이후 역대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면서 상향 폭과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도입 당시 시간당 8.50 유로이던 최저임금은 이제 8.84유로로 올랐다.
대연정이 작년 기준으로 48%인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2045년이 되더라도 46%로까지만 떨어지게 설계한 것도 사회안전망을 강화한 대책이다.
이를 위해 노사가 공동 부담하는 보험료율은 사회보험금 포함 평균임금의 18.7%에서 2045년에는 24.9%로 높일 방침이다.
독일 노동부가 애초 2045년이 되면 소득대체율이 41.6%로 내려가고 보험료율은 23.6%로 올라갈 것으로 봤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개선된' 것이다.
45년 동안 연금보험료를 내면 삭감 없이 연금을 받을 시기를 65세에서 63세로 앞당긴 것이나, 파견노동자의 파견기간 제한을 부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정책이다.
◇ 영국, 노동 유연성 강하지만 최저임금대상 확대로 '보정'
세계경제포럼 기준으로 140개국 가운데 순위를 매기면 영국은 노동 유연성이 여섯번째로 강한 국가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으로선 살기 쉽지않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저소득계층의 실질임금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영국내 전체 노동자의 7.3%(200만 명)가 최저임금 적용대상이었으나 2020년까지 12.1%(330만 명)로 늘어난다. 2020년까지 중위소득의 60% 수준으로까지 최저임금을 높인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계획이다.
이런 노동정책 아래서 영국에선 '제로-아워(zero-hour)' 계약'이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는 고용인이 주당 최저 노동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피고용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고용 계약이다. 다시말해 고용인이 필요할 때 근로를 요청하는 것으로 피고용인이 요구를 받아들여만 하는 계약상 의무는 없지만, 현실적으론 거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거의 100만 명이 이런 계약 관계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로-아워계약은 필요에 따라 인력을 공유하고 이합집산하는 프리랜서 경제를 뜻하는 '긱 경제'(Gig Economy)의 부정적 측면과 맞닿아 있다.
이에 집권 보수당은 '제로-아워 계약' 자체를 반대하지 않되 2015년 11월 피고용인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을 막는 '독점 조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놨다. 반면 야당인 노동당은 '제로-아워 계약'의 완전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 프랑스, 노동시장 유연성 뒤늦게 오히려 강화
프랑스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탓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작다. 비정규직도 산업별·기업별 단체협약을 대부분 적용받고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지 않는 등 보호장치가 강하다.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 비정규직 고용의 기본일 정도다. 노동비용을 낮추려고 비정규직을 고용해선 안 된다는 철학이 노동법 전반에 투영돼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프랑스에선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한다. 매년 체결되는 2천만 건가량의 고용계약 중 15% 내외만이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보호가 워낙 강하다 보니 비정규직 사용의 예외조항을 폭넓게 해석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비정규직 비중이 커지면서 기존 정규직 노동계층과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계층 간의 '이중구조화'는 심각한 문제가 됐다.
50대 이상에선 5% 미만인 임시직 비중이 25세 이하에선 30%에 이른다. 비정규직에서 3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20% 선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 좌·우파 정부 할것없이 노동시장 유연화 방향의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중도좌파 색채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당시 경제장관이던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과 함께 노동 유연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노동개혁을 꼽는다.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선 채용과 해고를 더 자유롭게 하고, 노동시간을 더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의 막강 노조들은 정부가 대규모 시위로 맞설 예정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 비정규직 문제 제로수준 스위스·네덜란드
스위스는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없다. 그 바탕에 세계 최고 수준의 강한 중소기업들이 있다.
코트라 취리히 무역관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기업은 99.7%가 직원 25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또 중소기업 중 대다수는 9인 이하 초소형 기업으로 전체 기업 형태의 88%를 차지한다. 시계산업, 정밀 기계, 화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66%에 이르는 고용을 흡수한다.
스위스 정부는 기술력 최강의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고, 직업교육을 제대로 마친 청년들은 그 기업들로 향한다.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은 29%에 불과하지만 학력에 따른 차별은 없다.
올해 4월 스위스의 청년실업률은 7.7%를 기록했고 전체 실업률은 3.3%로 안정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2.61배로 한국 4.51배의 절반 수준이다. 그만큼 임금 격차도 적다.
네덜란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등 대우를 위해 노사 간에 맺은 뉴코스 협약(1993년)과, 유연성과 고용안정 협약(1996년)이 체결된 이후 파트타임 고용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노동자들이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파트타임 비율이 40%에 가까워 유럽연합(EU) 전체의 두 배에 이른다.
노동자들은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트타임을 선호한다. 특히 정규직과 파트타임 종사자가 임금, 휴무, 사회보장에서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근무 형태에 따른 갈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노동의 유연성을 높여가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둔다.
kji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