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란 연대' 외치던 걸프국들, 트럼프 떠나자 티격태격
카타르 국왕 관련 '가짜뉴스'로 카타르-사우디·UAE 갈등
(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걸프 왕정 국가 카타르와 이웃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간 해묵은 갈등이 '가짜뉴스' 소동을 계기로 증폭되고 있다.
카타르는 24일(현지시간)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영 통신사인 QNA의 기사 송고 시스템이 해킹당해 이란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뉴스가 나갔다며, 해당 기사는 가짜뉴스라고 발표했다. QNA도 시스템을 긴급 복구하고 해당 기사를 삭제했으며 웹사이트를 차단했다.
문제의 가짜뉴스는 카타르 국왕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밈이 군사학교 졸업식에서 "이란을 강대국으로 인정한다.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정당화할 구실이 없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타밈 국왕이 미국의 국내 문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단명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무장 정파 하마스와 헤즈볼라, 무슬림형제단을 두둔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카타르 정부와 QNA는 가짜뉴스라고 설명하고 신속히 후속 조치까지 취했지만, 사우디와 UAE 매체들은 해당 기사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진짜 뉴스가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매체와 TV 채널이 계속 가짜뉴스를 보도하는데 놀라울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일간지 아랍뉴스는 타밈 국왕 발언 보도가 가짜뉴스라는 카타르 측 해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타밈 국왕의 발언이 UAE와 사우디, 바레인에 비판적인 알자지라 등 카타르 매체들의 논조와 일치한다고 비판했다. 사우디와 UAE에서는 범아랍 위성 채널인 알자지라의 웹사이트가 차단됐다.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가 지역 질서를 위협하는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에 너무 기울었다고 비판해왔으며, 알자지라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카타르는 UAE와 이집트 등이 테러단체로 간주하는 무슬림형제단을 둘러싸고 주변 아랍국들과 오래전부터 불화를 빚어 왔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권에 수백만 명의 지지세력을 가진 정치·문화 운동조직이다.
걸프 지역 일부 절대 왕정 국가들은 무슬림형제단을 정권 존립을 위협하는 단체로 보고 있으나, 카타르는 터키와 함께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당시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다.
사우디와 UAE, 바레인은 2014년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데 반발해 도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도 카타르가 시리아의 이슬람 과격단체들을 재정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들어 카타르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타밈 국왕의 발언 관련 가짜뉴스 소동이 지난 21일 이슬람 아랍 55개국 지도자들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정상회담에서 사우디가 아낌없이 보여준 환영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 기조연설에서 "이란이 평화의 파트너가 될 의향을 보일 때까지 모든 양심적 국가들은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이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이란에 대한 반대와 단합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를 떠난 지 수일 만에 티격태격하며 불화를 드러내고 있다.
barak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