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트럼프 첫 회동…트럼프 "뵙게 돼 큰 영광"
교황, 트럼프에 기후변화 회칙과 평화 상징하는 메달 선물로 줘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댔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사도궁을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한 뒤 30여 분 동안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을 거쳐 전날 저녁 순방 세 번째 행선지인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12억 신자를 거느린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이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겸손한 행보로 세계적으로 큰 신망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교황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난민 문제, 기후 변화, 경제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제 현안에서 의견 충돌을 보인 바 있어 두 지도자의 만남에는 일찌감치 이목이 집중됐다.
교황과 트럼프는 사형제도, 무기 거래 등 대부분의 이슈에서 생각이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열렬한 낙태 반대자라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짙은 색 양복을 입은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과 만나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뵙게 돼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교황 역시 미소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했으나 교황청 풀기자단이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두 지도자는 이어 사도궁의 교황 개인 서재의 널따란 책상에서 통역만 대동한 채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분여에 걸친 교황과의 면담을 마무리한 뒤 멜라니아 여사와 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동행한 가족과 미국측 사절단을 교황에게 소개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멜라니아 여사와 이방카는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교황을 방문할 때 입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어 예의를 갖췄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만남을 마무리 짓기 전 서로를 위한 선물도 교환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황청이 2015년 발행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포함해 3권의 교황청 문서와 교황의 신년 평화 메시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가지가 그려진 메달을 전달했다.
교황이 올리브 나무를 묘사한 메달에 대해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겐 평화가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에게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마틴 루터 킹의 책들을 가져왔다"며 "교황께서 이 책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회동이 종료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과 함께 수요 일반 알현을 진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 등 일행과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가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으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로마 시내로 이동,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각각 만난 뒤 25일 예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이날 오후 전용기 편으로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한다.
그는 25일 오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26∼27일 시칠리아 섬 타오르미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23일 밤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의 지붕에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구가 우선'(Planet Earth First)이라는 메시지를 투사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전향적인 환경 정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영국 맨체스터에서 22일 밤 이슬람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테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유럽 전역에 다시 테러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이탈리아 당국은 바티칸과 로마 중심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동 경로를 전면 봉쇄하고, 시내 곳곳에 무장 병력을 배치하는 등 초비상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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