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상상하세요"…듣고 만지고 체험하는 '빈 페이지'展
금호미술관서 24일 개막…미디어아트·설치 작가 7팀 참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로렌스 스턴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를 보면 까맣게 칠해진 빈 페이지가 나옵니다. 독자가 소설 속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번 전시는 관람자가 다양한 감각을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24일 개막한 기획전 '빈 페이지'(Blank Page)는 이 미술관이 2년 만에 개최하는 미디어아트·설치 전시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김윤옥 큐레이터는 "금호미술관은 내부가 하얀 사각형이어서 사진이나 회화 전시만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사람들의 인식을 뒤집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젊은 작가 7팀이 참가했다. 진달래, 박우혁 작가를 제외하면 모두 30대다. 이들은 고단한 일상이나 허구적 풍경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대부분의 작품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자극하고, 촉각이나 후각을 동원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전시 공간은 4개 층으로 나뉘며, 층마다 1∼2개의 작품이 있다. 3층에는 박여주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 '불안한 여행'을 재현한 설치 작품과 어두운 공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만나볼 수 있는 진달래·박우혁의 작품 '패턴 연습'이 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현대차그룹이 신진 미디어아트 작가에게 주는 상인 'VH 어워드'를 받은 박제성의 26분짜리 영상 작품 '여정'이 관람객을 맞는다. 17m 길이의 곡면 스크린에 상영되는 여정은 게임 속 영상처럼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안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인 작가 문준용이 제작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 '비행'이 있다. 관람자가 양팔을 벌려 몸짓을 하면 동작에 맞춰 하얀 스크린에 검은 궤적이 나타난다.
2∼3층에 상상력을 유발하는 작품이 배치됐다면, 1층에서는 양정욱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는 2013년 물류센터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일했던 노동자 3명이 퇴근한 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다. 사람 머리 모양을 한 커다란 불빛이 벽에 아른거리고, 단조로운 건반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박재영의 '아일랜드 에피소드'와 김주리의 '일기(一期)생멸(生滅)Ⅱ'는 컴컴한 지하 1층에서 볼 수 있다. 박재영은 바람과 소리, 향기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표현했고, 김주리는 무성한 풀과 LED 조명으로 쓸쓸한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성인 5천원, 학생 3천원, 미취학 어린이 2천원. ☎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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