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꺼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유한 사람"

입력 2017-05-24 13:49
"스마트폰 꺼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유한 사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한 인도작가 아미타브 고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난민센터에 가보면 음식 나눠주는 곳이 아니라 스마트폰 충전기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취약할수록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럭셔리는 스마트폰을 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부유한 사람은 스마트폰을 안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 아닐까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61)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사회인류학 박사 출신인 고시는 인류학적 서사전략을 활용해 개인·국가 정체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로 꼽힌다.

"난민이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탈출한다면 누가 통제권을 갖고 있을까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난민일까요, 스마트폰 엔지니어일까요."

작가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그린 '캘커타 염색체'(1995)로 과학소설에 주는 아서 C. 클라크상을 받을 만큼 과학기술과 인류의 상호관계에 관심이 많다. 작가는 "기계가 바둑경기에서 이기고 소설도 쓰는 시대다. 이미 기계가 우리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기계를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는 우리를 도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시는 2000년작 '유리궁전'으로 명성을 얻었다. 제국주의 침략과 두 차례 세계대전, 독재정치로 이어지는 인도와 미얀마의 역사를 인류학자다운 치밀한 고증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작가는 "인도는 많은 언어와 종교·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라며 "굉장히 많은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소설가에게는 낙원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포럼 첫날인 23일 '인디라 간디의 흔적'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1984년 인디라 간디 총리 피살사건과 직후 벌어진 폭력사태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폭력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봤다.

작가는 1984년 인도에서 겪은 폭력을 17년 뒤 미국 뉴욕에서 다시 경험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작가는 세계무역센터 인근의 학교에 다니는 딸에게서 9·11테러 목격담을 듣고 "시간이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제가 젊을 때 인도에서 경험한 상황이 전세계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테러와 종교갈등이 일상적이었고 유럽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죠.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현상이 전세계에서 일어납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지 못한 파괴의 시작점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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