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크롱, 노사 대표와 릴레이 회동…노동개혁 '시동'
엘리제궁 불러 하루종일 개별 면담…'프랑스 살 길은 노동개혁' 설득
재계 "하루빨리 추진해야" 환영 vs 노조 "일방통행 추진 강력반대"…진통 예상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경직된 노동시장의 '대수술'을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요 노조·재계 대표들과 릴레이 회동을 시작으로 노동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프랑스 재계는 새 정부의 신속한 개혁추진 의지를 환영하고 적극 협조의사를 밝혔지만, 노조들은 밀어 붙이기식 정책 추진 시 대규모 시위로 맞설 태세라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개혁을 주요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종일 주요 노동단체와 재계 관계자들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맨체스터 테러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영국대사관에 들른 것을 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기업인단체 대표들과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 3대 노동단체인 노동총동맹(CGT), 민주노동동맹(CFDT), 노동자의 힘(FO)의 대표들에 이어 경제인연합회(Medef), 중소기업협회(CPME) 대표들도 대통령과 각각 1시간가량의 일대일 면담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총 8개 단체 대표들과 8시간 넘게 마라톤 면담을 하며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프랑스 대통령이 특정 정책 추진을 위해 이렇게 종일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불러 면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새 정부가 노동개혁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노조 대표들에게는 계속되는 실업난과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의 지나치게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새 정부는 개별기업이 산별노조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들과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퇴직수당의 상한선을 둬서 기업의 해고부담을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퇴직수당 상한제는 작년에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에 담았다가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막판에 제외하는 등 진통이 있었다.
정부대변인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는 면담과 별도로 프랑스 2 TV에 출연해 "오늘 자리는 대화의 시작으로 노조들이 변화한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의 대선공약의 핵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프랑스의 앞날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다"면서 강한 정책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노조들은 새 정부의 노동개혁 청사진이 근로자 보호 장치를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 행정명령 형태로 8월 말까지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온건성향 노동단체인 민주노동동맹(CFDT)의 로랑 베르제 위원장은 대통령 면담 직후 "노동법의 성급한 개정은 해악만 불러올 것"이라며 "이토록 중요한 이슈를 놓고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다. 대통령이 강행처리를 시도하면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선 직후부터 노동시장 개혁 논의에 반대하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여온 프랑스 최대노동단체 노동총동맹(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 역시 8월 말이라는 시한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제시한 기한은 여름 휴가와 맞물린다. 노동자들의 휴가 기간에 이런 중대한 법안을 논의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일정표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노조 설득을 위해 추진 속도를 다소 늦출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전반적으로 노조들은 마크롱 정부의 대화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일방통행식 추진 기미가 보이면 대규모 시위로 맞서겠다는 기류다.
반면에 재계는 마크롱의 노동개혁 의지를 전폭적으로 환영했다.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피에르 가타즈 회장은 "노동시장개혁은 오늘날 프랑스의 주요 숙제"라며 "정부는 추진과정을 투명하게 협의해나가되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엘리제궁은 "대통령의 공약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됐다"면서 마크롱의 구체적인 노동개혁 방안에 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한 뒤 세부 내용은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와 뮈리엘 페니코 노동장관이 조율해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필리프 총리는 중도우파 야당인 공화당 출신에 기업에서 로비스트로 일한 적이 있는 정치인으로, 마크롱의 노동시장 개혁에 찬성해왔다. 페니코 노동장관 역시 다국적 식품기업 다논(Danone)의 인사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한 뒤 투자진흥 공공기관인 '비즈니스 프랑스' 대표를 역임한 정통 기업인 출신이다.
당분간 마크롱은 노조와 좌파 유권자들을 상대로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총리와 노동장관은 세부적인 액션플랜 마련과 6월 총선 이후의 정치상황 대비에 진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주 35시간 노동제가 오랜 기간 법으로 정착된 데다 막강한 노조들이 벼르고 있어서 노동개혁은 마크롱에게는 첫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중도좌파 올랑드 정부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면서 이를 추진하다가 노조의 대규모 시위에 직, 상당 부분 후퇴한 방안을 통과시키는 데 그친 전례가 있다. 마크롱은 당시 경제장관으로 노동개혁 추진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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