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고 1년…'안전 우선'으로 방향 전환했으나 갈 길 멀다

입력 2017-05-23 08:00
구의역 사고 1년…'안전 우선'으로 방향 전환했으나 갈 길 멀다

스크린도어 전면 재시공·레이저센서로 교체 등 대책 지연

노후 전동차 교체·예산확보 등 지하철 안전과제 첩첩산중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김모군이 사망한 사고는 안전과 노동 문제에서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다.

처음엔 단순 안전사고로 취급됐으나 19세 고졸 김군이 처한 열악한 업무 환경과 지하철 안전불감증 등이 드러나며 세월호 사고 이후 가뜩이나 예민한 시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 지하철은 '돈과 정시성 보다 안전 최우선'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장비 교체가 당초 일정보다 늦어지고 지하철 양공사 통합작업이 겹치며 환경개선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전동차 교체 등 다른 안전 조처들이 여전히 뒤로 밀리는 것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 구의역 이후 지하철은 안전 최우선

서울 지하철은 그동안 '천만시민의 발'이라고 불리며 정시성이 강조됐다. 출근길 지하철 고장으로 지각하게 된 시민들이 항의하는 풍경이 당연했다.

그러나 40년이 된 지하철이 제 시간에 맞춰 다니고, 고장이 나도 재빨리 정상운행하고, 현재 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하청업체 소속 김군같은 직원들이 목숨 걸고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고쳐야 했던 점은 조명되지 않았다.

구의역 사고는 안전을 비용절감 대상으로 본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과 부실한 스크린도어 공사가 종합적으로 빚어낸 참사라고 진단됐다.





서울시는 2008년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구조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일환으로 안전 업무를 분사 형태로 외주화했다. 이렇게 생겨난 은성PSD에 인력을 보내되 같은 처우를 보장하는 눈가리고 아웅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대신 실무는 '김군' 등이 세후 월 140여만원만 받으며 주로 했다.

2003년 민간업체인 유진메트로컴 투자 방식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스크린도어가 고장이 잦고 부실한 것도 문제였다.

박원순 시장은 구의역 사고 이후 "모든 가치에 앞서서 안전을 우선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스크린도어 전면 재시공·레이저센서로 교체 등 지연

서울시는 우선 스크린도어 장애물 센서를 승강장 쪽에서 점검·보수할 수 있는 레이저센서로 교체하기로 했다.

작년 말까지 60억원을 투입해 2호선 등 53개역에서 교체한다고 밝혔으나 지연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품질기준과 규격 강화로 인해 늦어지고 있다"며 "4월까지 12개 역사에서 완료했으며 나머지 41개 역사는 6월 완료가 목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에는 메트로 54개역에서 레이저센서로 교체하는 2단계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 157개역과 9호선 24개역도 내년까지 교체를 끝낸다.



스크린도어 전면 재시공 계획은 2개월 늦어진다. 9개 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아예 다시 설치하려고 했지만 입찰이 유찰됐다.

김포공항역은 6월, 7개 역은 8월, 우장산역은 12월에 완료할 계획이었다.

서울시는 "기초금액을 높여서 15일 자체 긴급 입찰공고를 해놨다"며 "김포공항역 사망사고 후 안전 규격을 강화했으나 2차례 유찰되고 수의계약 대상 업체 제안서가 부적격 판정됐다"고 말했다.

◇ 스크린도어 비상문 교체하고 열린 상태에서 출발 못하게

비상시 빨리 탈출할 수 있도록 고정문을 비상문으로 바꾸는 사업은 지난해 청담역 등 4개역에서 했다.

올해 말까지 71개역에서 비상문으로 추가 교체한다. 현재 계약심사를 마치고 발주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신도림역 등 국토부가 선정한 18개역을 포함해 57개역에서 올해까지 교체하고, 승객이 많지 않은 나머지 250개역은 2021년까지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사업에 국비가 책정되지 않아서 시 예산과 지하철 공사 자체 예산 등을 통해 계획보다 더 많이 하기로 했다.

탈출을 막는 고정문 광고판 2천169곳은 4월까지 계획대로 철거했다.

스크린도어가 열린 상태에서 전동차가 출발할 수 없도록 하는 무선주파수(RF) 제어 시스템이 4월 1호선에 모두 구축됐다. 3호선 34개역에도 연내 구축된다.



장기적으로는 신규 전동차에 자동열차운행(ATO) 신호시스템을 적용, 스크린도어가 열렸을 때는 전동차가 승강장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한다.

지난달 들어와 시범 운행 중인 2호선 신규 전동차 10량에는 기능이 갖춰져 있다.

또 지난달 10일에는 메트로 121개 전역 스크린도어 운영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관제시스템이 갖춰졌다.

종전에는 이상이 있을 때 역무원이나 기관사가 종합관제소로 신고해야 했다.

◇ 안전 관련 직영으로…노후시설 등 안전 과제 많아

구의역 사고 후 안전 관련 업무는 외주하지 않고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며 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무를 작년 9월부터 직영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 안전업무직 142명을 채용했고 11월에는 승강장안전문 전담관리 조직이 생겼다. 관리자 출동 거점도 2곳에서 4곳으로 늘렸다.

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외주업체인 은성PSD 소속이던 김군 동료들이 메트로 안전업무직으로 옮겼다.

유진메트로컴이 담당하던 24개 주요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업무도 메트로에서 총괄 관리하고, 인력도 206명으로 60명 늘었다. 비용은 모두 유진메트로컴이 낸다.

서울시는 유진메트로컴과 계약 재구조화로 과다 수익 시비를 잠재우고 안전기금을 확보했다. 유진메트로컴은 스크린도어 설치, 유지보수를 맡는 대신 광고수입을 가져가는데, 계약조건을 두고 특혜 시비도 있었다.

이와함께 서울시는 지하철 안전 인력을 다방면으로 대폭 늘렸다.

김포공항역 사고 이후 스크린도어 장애가 잦은 9개역에 관리 인력을 추가했고 올해부터는 뉴딜일자리를 활용해 스크린도어 안전요원 446명을 배치했다.

비상대응 매뉴얼을 정비해서 올해 2월부터는 차량 고장이 나면 승객안내를 먼저 하고 관제보고를 하기로 했다. 열차사고시 출입문을 전면 개방, 대피를 유도한다.

이런 조처에도 서울 지하철 안전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노후 전동차 교체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내진 보강도 필요하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국비 지원이 없어 위험을 알면서도 손을 못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의회 우형찬(더불어민주 양천3) 의원은 "구의역사고 이후 바뀌는 것이 스크린도어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다 발생한 구의역 사고가 우리 사회 어디에 있는지, 특히 안전분야를 중심으로 더 많이 감시하고 생각하는 1주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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