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실리콘밸리 길들이기' 박차…잣대는 정보보호·공정경쟁

입력 2017-05-19 10:17
유럽 '실리콘밸리 길들이기' 박차…잣대는 정보보호·공정경쟁

정치권 시각변화로 줄징계…"납세·사생활·공정거래에 해롭단 인식"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대한 유럽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유럽 정치권의 인식이 '가만히 두면 해롭다'는 쪽으로 급격히 돌아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 등 미국 IT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규제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EU 집행위는 이날 2014년 왓츠앱 인수 과정에서 규제 당국을 호도하는 허위정보를 제공한 페이스북에 대해 1억1천만 유로(약 1천400억원) 벌금을 부과했다.

앞서 프랑스도 정보보호 관련 법규 위반을 이유로 15만유로(약 1억8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벨기에와 네덜란드도 페이스북을 향해 경고 성명을 냈다.

업체별로 사안이 다르기는 하지만 유럽 당국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 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유럽 당국이 이들 활동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는 핵심 잣대는 사생활 침해 같은 문제를 다루는 정보보호 법규, 담합이나 독점을 방지하는 공정거래 법규다.

일단 IT기업들의 정보 관리는 유럽인의 기본권과 직결된다는 게 유럽 규제 당국의 지론이다.

미국 IT기업을 상대로 여러 차례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한 바 있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 감사관은 지난해 한 연설에서 "빅데이터의 미래는 그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보호, 이용자의 권리 등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빅데이터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하고 싶어 한다"며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규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 가시적인 금전 지불을 요구하지 않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지 규제하는 문제는 다소 모호한 면이 있다.

얀 필리프 알브레히트 유럽의회 의원은 "IT 기업 대부분은 그들이 가진 자산이 아닌 데이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다"며 "적법하게 확보한 데이터를 시장 지위 남용이나 이용자 차별 등에 활용한다면 경쟁법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규제 당국뿐 아니라 정보보호를 요구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12년 법학을 공부하던 오스트리아의 맥스 쉬렘스는 페이스북이 공격적인 데이터 수집으로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미국 IT 기업이 유럽서 취득한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한 세이프하버협정에 제동을 걸었다.

쉬렘스는 페이스북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이용자 2만5천명을 대신해 1천250만유로(약 156억7천만원)를 청구하는 집단 소송도 제기했다.

IT 기업들의 성업과 함께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거지자 이들을 대하는 유럽의 정치적 태도가 바뀌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납세, 사생활 보호, 공정거래 등 사안이 무엇이든 간에 IT 기업들의 역할이 건설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한때 미국 IT 기업의 자본주의, 기술 아이디어가 유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제는 유럽 정치인들이 회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페이스북, 구글, 그 외 다른 미국 IT 업체들이 어떤 형태의 규제를 받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으나 유럽 전역의 인식은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다가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gogo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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