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데뷔 40년 맞은 최백호

입력 2017-06-12 08:01
[연합이매진] 데뷔 40년 맞은 최백호

노래와 그림, 양 날개로 살아온 '낭만가객'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낭만가객'으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최백호(67) 씨가 올해로 가수인생 '불혹'을 맞았다.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최 씨는 한때 슬럼프에 빠졌으나 1995년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데뷔 40주년을 계기로 새 앨범을 발표한 데 이어 전국 순회 콘서트 투어에 나서고 화가로서 개인전을 여는 등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 어느덧 40년…기념 공연ㆍ전시로 바쁜 나날



새해가 막 열린 1977년 1월,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서울 명동거리는 문화와 청춘의 열기로 후끈했다.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걷던 20대 중반의 청년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애잔한 감성의 노래에 절로 발길을 멈췄다.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음률과 가사. 그런데 이게 꿈이란 말인가, 생시란 말인가! 애틋하게 울려온 노래는 다름 아닌 자신의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였다.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내가 부른 노래가 아니겠어요! 순간 눈물이 핑글 돌았지요. 그러면서 실감했어요. 내게도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는구나 하고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뮤지스땅스. 독립음악인 창작지원시설인 이곳에서 기자를 만난 최 씨는 가수로 정식 데뷔하던 40년 전을 돌아보며 그 소회를 들려줬다. 어느 날 갑자기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로 비상하는 현실이 처음엔 도무지 믿어지지 않더란다. 최 씨는 "하지만 잠시였어요. 데뷔 3년이 지나면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생활의 아픔까지 겹치면서 감당하기 힘든 나날이 계속됐지요. 가수로서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게 될 줄 그땐 어찌 알았겠어요"라며 뭉클한 감회를 내보였다.

최 씨는 지난 3월 데뷔 기념앨범 '불혹'을 발표한 데 이어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기념 공연을 펼치는 등 인생 후반의 열정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부산, 대전, 대구에서 콘서트 투어를 했고 6월 10일에는 경기 성남에서 공연한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이에 앞서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뮤지스땅스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어 그림판매수익금 전액을 독립음악인들의 창작지원금으로 기부했다.



◇ 화가 꿈 접고 생업 위해 가수의 길로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크레용과 물감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게 왠지 좋았고, 또 다른 그림 세계인 만화에도 깊이 빠져들곤 했다. 반면, 음악에는 그야말로 젬병이었다. 친구들로부터 '음치'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라다 보니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미대 진학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꿈을 포기하고 이전엔 상상치도 못한 음악의 길로 들어섰지요.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고향인 부산의 서면에서 친구 매형이 운영하는 라이브 클럽에서 마이크를 한 번 잡아본 게 첫 계기가 됐습니다. 뜻밖의 공연 성공은 1주일 만에 입소문으로 번졌고, 얼마 안 있어 서울 쉘부르 출신 가수들이 노래하던 대형 라이브 클럽으로 스카우트됐지요. 나이 스물세 살 때인 1973년의 일이었습니다."

최 씨는 그런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국회의원인 아버지(최원봉)가 아들 생후 5개월 만에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1남 2녀의 자식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최 씨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갈망이 굉장히 컸다"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딘가에 아버지가 숨어서 살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초등교사의 박봉으로 자식을 키우기 힘들다고 판단한 어머니는 교편을 버리고 장사의 길로 들어섰으나 이번에 기다리고 있는 비운은 어머니의 타계였다. 최 씨 나이 스물셋이던 1970년 10월, 췌장암을 앓던 어머니가 조그마한 잡화점의 단칸방에서 세상을 등진 것이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군에 입대했지만 결핵 판정을 받고 불가불 의가사 제대를 해야 했다.



◇ 애끊는 사모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입니다. 군 입대 전에 적어둔 가사에다 작곡가 최종혁 씨의 곡을 붙여 탄생하게 됐지요. 종혁 씨와 술을 마신 뒤 안개 낀 부두길을 거닐며 가을 낙엽처럼 떠나가신 어머니를 어떻게라도 붙들어보려 눈물로 발버둥 쳤어요."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로 시작하는 데뷔곡에는 이 같은 심사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하니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시라는 하소연은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울린다.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버린다면서 말이다.

가수가 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던 그를 가요계로 이끌어준 은혜로운 동반자들이 있었다. 최종혁 씨와 작사가 배경모 씨, 가수 하수영 씨가 바로 그들. 부산MBC DJ였던 배 씨는 최 씨가 무명가수로 노래할 때 대형 클럽에 소개해 서울에서 온 인기가수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줬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인기를 얻은 하 씨는 서울의 서라벌레코드로 연결해주면서 최 씨의 가요인생에 결정적 도약대가 됐다. 허스키한 탁성의 노래와 쓸쓸함이 묻어나는 가사는 이렇게 팬들을 일시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인가. '입영전야' '그쟈' 등 앨범을 잇달아 내며 상승가도를 달리는 듯하던 그의 인기는 음반제작사를 바꾸고 1979년 '영일만 친구'를 낸 것을 고비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앨범을 냈으나 반응은 그때마다 시들했고, 생활을 위해 하루에도 몇 개씩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노래했으나 심신은 날로 지쳐만 갔다.

1983년에 발표된 '고독'에선 이런 심사가 짙게 묻어난다.

<가물거리던 별빛마저/ 잠이 든 밤하늘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슬피 울며 외로이 날아가네/ 나의 고독은 어둠에 묻혀/ 밤보다 더 깊은데/ 모닥불 하나 피워 앉은/ 이내 가슴엔 추억만 남아 있네>

이처럼 애조띤 탄식은 노래 후미에서 미래를 향한 간절한 소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훗날에 보내는 인생 반전의 기대이자 하소연이랄까.

<산다는 것의 깊고깊은 의미를/ 아직은 아직은 나는 몰라도/ 밤이 가도 아침이 밝아오듯이/ 인생이란 돌고 또 도는 것인가>

◇ '낭만에 대하여'로 새 출발

절망 속의 그가 1990년에 꿈을 찾아 떠난 미국행이었지만 현실은 그곳 역시 녹록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처가의 도움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방송에서 DJ로 활동했으나 몸과 마음이 힘들기는 매한가지. 견디다 못한 최 씨는 2년 뒤 귀국을 결심한다. 그리고 대히트곡 '낭만에 대하여'를 잉태하고 탄생시킨다. 앞에 언급한 노래 '고독'의 가사처럼 밤이 가도 아침이 활짝 밝아온 것이랄까.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아내를 보면서 '내 첫사랑도 저렇게 설거지를 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중학교 때 같은 기차로 등하교했던 소녀였지요. 콧날이 오뚝하고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얀 이 단발머리 소녀를 멀찍이서 매일 바라보는데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요. 3년 동안 말 한마디도 못 건넸고, 가슴앓이하느라 공부도 안 했어요. 섬광처럼 떠오른 그 기억을 가사와 곡으로 만들어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독특하다. 탱고 리듬이어서 더 좋다'며 흔쾌히 '합격 판정'을 해줬죠! (웃음)"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으로 시작하는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며 시간의 무상함을 특유의 창법으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이 추억은 훗날 '첫사랑'(2013년 발표)이라는 노래에서 〈거리엔 바람 너의 야윈 모습/ 흔들리는 청춘으로 힘이 들었지/ 창밖엔 비 밤을 새우는/ 길 잃은 새가 되어 울었지/ 아쉬워 작은 가슴/ 어쩌지 못해 아팠던/ 이제는 멀어진 세월/ 그리운 첫사랑〉으로 애련히 묘사된다.

"이 노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어요.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랄까요. 발표 때부터 오늘날까지 팬들의 사랑이 식지 않고 꾸준한데, 마치 이 노래를 흔쾌히 인정하고 사랑해준 아내의 넉넉한 품과 같아요. 내 음악인생을 '낭만시대' 전과 후로 나눌 만큼 이 곡은 재기와 도약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습니다."



◇ 삶 관조하는 인생 후반…그림 사랑도 여전

데뷔 40주년 앨범 '불혹'은 최 씨의 음악인생을 압축한다. 여기에는 '위로' '하루 종일' '바다 끝' '풍경' 등 최근 곡은 물론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낭만에 대하여' 같은 기존 곡도 나란히 실렸다.

이중 '위로' '하루 종일' '바다 끝'에는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남자의 쓸쓸한 감회와 이를 관조하려는 마음이 진중하게 담겨 있다. 예컨대 '바다 끝'에서 그는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 짙은 어둠만 남은/ 시작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그곳에 물결처럼 춤추던 너와 나를 놓아주자〉고 노래한다. 사랑도, 이별도, 외로움도 초탈의 마음으로 인생의 바다 끝에 내려놓겠다는 것.

어릴 적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도 함께 걷고 있다. 미대 진학 포기의 아픔을 털고 생활 속에서 틈나는 대로 붓을 잡고 있는 것. 요즘도 아침이면 두 시간씩 작품을 꾸준히 그린다. 천성적으로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인지 캔버스를 마주하노라면 고요히 평정심을 되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그림의 소재는 주로 나무다. 이에 대해 최 씨는 "사람도 그려보고 사실화로도 표현해봤으나 결국 재미가 없더라"며 "반추상의 나무 작품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편하게 엮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두 25점이 전시돼 이 중 24점이 팔린 이번 뮤지스땅스의 개인전 작품도 마찬가지.

"그림 속의 나무는 자연에서 사는 나무가 아니에요. 인위적 도시공간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이지요. 이들을 보노라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싶어요. 나 역시 그 나무 중 한 그루일 거구요.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는 붉은 색을 유독 그림에서 많이 쓰는 이유는, 그럼에도 꿈과 열정을 놓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서 힘차게 살아가자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의 말처럼 최 씨는 70년 가까운 인생길에서 비록 흔들리고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결국은 다시 일어서 자신의 길을 당차게 열어왔다. 오는 8월에도 신곡을 발표할 예정. 전시회 또한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개최할 것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선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높다. 영화 '미사리'의 시나리오를 이미 완성한 가운데 조만간 감독 데뷔도 기대된다. 2008년 시작한 SBS 러브FM의 음악전문 프로그램 '최백호의 낭만시대'는 매일 밤 10시 5분부터 자정까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데 내년 3월로 만 10년째를 맞게 된다고.

굴곡의 삶을 꿋꿋이 살아온 예술가로서 삶과 의미를 요약해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꾸밈없는 간편복 차림과 하얗게 센 머리처럼 소탈하고 담담하게.

"70 나이가 눈앞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실감도 잘 나지 않고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럴까요? (웃음) 이제까지 그랬듯이 순수와 열정을 지키려 합니다. 탁해지지 않는 영혼으로 사는 거지요. 어린 날부터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만화를 가까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머리 염색이요? 해본 바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털털하고 솔직하게 살지요, 뭐! (웃음)"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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