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순간에도 제자들 탈출 도와" 단원고 고창석 교사
미수습 9인 중 한 명…세월호 침몰 1천127일 만에 유해 발견
"자상한 남편, 최고의 아버지"…'미안하다' 마지막 말 남겨
(안산=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왜 이제야 오셨어요."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체육 교사의 유해가 3년 만에 확인됐다. 정확히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1천127일 만이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 5일 오전 11시 36분께 침몰 해역에서 수습한 뼛조각 1점은 단원고 고창석 교사로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이 유골이 발견됐던 곳은 유실 방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구역 내로, 침몰한 세월호 선미 객실과 맞닿아 특별 수색이 이뤄진 곳이다.
고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 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변을 당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고 교사는 대학생 때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고 교사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항상 몸이 먼저 앞섰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후 조문 온 한 제자는 가족에게 "선생님께서 2005년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학생휴게실에 불이 나자 소화기를 들고 가장 먼저 뛰어와 진화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고창석 양승진(미수습자) 교사들의 숙소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로비 옆이었지만, 4층 객실 곳곳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모습이 목격됐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교사는 '아내 바보'였던 것으로 유명했다.
사고 당시 아내는 단원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옆 학교 단원중 교사였다.
그는 아내가 행여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근하면, 담장 너머로 간식거리를 챙겨줬고,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미리 꽃을 준비하는 세심한 남편이었다.
고 교사는 두 아들에게도 지극 정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퇴근 후 피곤할 법도 하지만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고, 틈틈이 캠핑 여행도 다녔다.
고 교사의 아내는 "그는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겐 최고의 아버지였다"고 추억했다.
아내는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남편이 보낸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추억을 3년간 바다에 묻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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