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회영은 다롄 수상경찰서에서 고문받아 순국"

입력 2017-05-17 11:38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다롄 수상경찰서에서 고문받아 순국"

우당 이회영 탄생 150주년 학술회의서 황춘화 교수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 지도자 양성을 위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는 지난달 21일 우당의 생가터인 중구 YWCA회관 강당에서 탄생 150주년 기념식을 열었고, 우정기념사업본부는 기념우표 56만 장을 제작했다.

기념사업회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함께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독립운동과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황춘화(黃春華) 중국 지린(吉林)성 교육학원 교수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재중 활동시기 독립운동사료 연구' 발표를 통해 우당이 중국 다롄(大連) 수상경찰서에서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아 순국했다고 주장한다.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우당의 사망 장소와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다롄 수상경찰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설 외에도 뤼순(旅順)감옥에서 사형당했다는 설, 다롄 수상경찰서에서 자결했다는 설 등이 제기됐다.

황 교수는 뤼순감옥 사형설에 대해 '뤼순일아(日俄)감옥실록'을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기록에는 우당이 사망한 1932년 뤼순감옥에서 처형된 한국인은 2명이며, 이들은 모두 나이가 55세 이하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당시 우당의 나이는 65세였다.

황 교수는 자살설에 관해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독립만을 추구해 온 지사가 자결을 선택할 리 만무하다"며 "수상경찰서에서 이회영이 자살할 만한 도구를 소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이어 "중국 각지를 떠돌며 생활한 탓에 심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고 결론짓는다.

학술회의에서는 이외에도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이회영의 독립운동을 재평가하고, 박성순 단국대 교수는 신흥무관학교의 신입생 모집과 이동 경로에 관해 이야기한다.

김명섭 단국대 겸임교수와 쑨커즈(孫科志) 중국 푸단대 교수는 각각 '이회영의 1920년대 독립운동과 역정', '중국의 아나키즘 운동과 이회영'을 주제로 발표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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