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저자도 숨긴 'X시리즈'…책 포장 뜯어보니
박유경·필립 커·로맹 가리 소설…17일 0시 저자·제목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제목과 저자를 포장지로 가린 채 등장해 한 달 넘게 서점가의 궁금증을 키워온 '개봉열독 X시리즈'가 베일을 벗었다.
출판사 은행나무·북스피어·마음산책은 17일 0시 정각 'X시리즈'의 정체를 공개했다. 올해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작인 박유경 작가의 '여흥상사'(은행나무), 영국 작가 필립 커의 탐정소설 '3월의 제비꽃'(북스피어),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마법사들'(마음산책)이다.
책에는 출판사들 고유의 색깔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은행나무는 소설을 중심으로 한 한국문학에 주력하고, 북스피어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문학을 적극 발굴해왔다. 마음산책은 지금까지 로맹 가리의 작품을 열 편 넘게 소개한 출판사다.
'3월의 제비꽃'은 1930년대 독일의 사립탐정 베른하르트 귄터가 도난당한 보석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전쟁의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1936년의 베를린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한 소설"이라는 평가와 함께 프랑스 미스터리 비평가상과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을 받았다. 필립 커가 1989년에 발표한 데뷔작이자 '베를린 누아르 3부작'의 첫 편이기도 하다.
'마법사들'은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200년 넘게 산 화자가 유년기부터 자기 집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볼테르·프로이트·카사노바·레닌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불러내고 허구를 뒤섞은 한 일가의 모험담이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기 직전인 1973년 이 작품을 발표했다.
'개봉열독 X시리즈'는 세 출판사 대표들이 '떼거리 서점 유랑단'을 꾸려 세계 각지의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본의 'X문고'나 유럽의 '서프라이즈 노벨'(A Novel Surprise),'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 같은 블라인드 이벤트다.
세 출판사는 지난달 1일부터 각각 '은행나무X', '북스피어X', '마음산책X'라는 이름으로 제목과 저자를 가리고 이들 책을 판매했다. 모두 소설이라는 점과 작품에 대한 인터넷서점 MD들의 간단한 평이 단서의 전부였다. 독자 반응은 뜨거웠다. 6주 동안 각각 7천부 안팎, 합해서 2만부가 나갔다. 국내 문학출판 시장에서 쉽게 올리기 힘든 판매고다.
출판사들은 판매량보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준 독자들의 '의리'에 더 놀랐다. 예약판매 기간이 끝나고 책이 배송된 지난달 25일부터 사실상 책의 정체가 공개됐지만 아무도 '발설'하지 않았다. SNS에는 포장을 뜯기 전 사진과 함께 '어떤 책인지 말하고 싶지만 꾹 참아야 한다' '알지만 말 못해' 같은 깜찍한 글들만 올라왔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책이 많이 팔린데다 독자들이 정체를 숨겨줘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송인서적 부도 등으로 우울한 상태에서 출판계 보릿고개를 즐거움으로 넘겼다"며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책의 소중함을 전달할 새로운 이벤트를 할 계획이다. 제목과 저자를 가리는 식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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