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헬기사격은 광주가 외롭게 저항했던 27일 새벽 이뤄졌다"
광주시 5·18진실규명 지원단 "공수대원 공중엄호 위해 M-60 기관총 발포"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은 카빈총으로 공수대원에게 맞섰던 광주시민을 향한 M-60 기관총의 공중엄호였다.
광주시는 15일 지난 3개월 간 진행한 3만여 페이지 정부기록 분석과 5·18 관련인 증언수집을 통해 이같이 결론 내렸다.
이날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배포된 광주시 보도자료에는 고립무원 상태였던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신군부에 항거했던 시민의 최후 순간이 담겼다.
광주시는 헬기사격이 도시 전체가 숨죽인 채 깨어있었던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부터 5시 30분 사이에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가 파악한 5·18 당시 육군본부 작전지침은 '헬기 작전계획을 수립하라'였다.
12·12 반란으로 군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하나회'라는 구심점으로 뭉쳤고, 하나회에 몸담았던 황영시 당시 육본 참모차장이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을 무시한 채 이 같은 명령을 하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작전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광주시가 수집한 자료와 목격담은 "제1항공여단 61항공단 예하 202·203 대대 소속 UH-1H 헬기가 11공수 61대대 2지역대 4중대의 진압작전을 지원·엄호하기 위해 정지비행 상태에서 M-60 기관총으로 전일빌딩 10층 등에 공중 사격했다"고 증언했다.
전일빌딩 10층은 5·18 때 지역 민영방송사였던 전일방송이 자재창고로 썼던 공간이다.
탄흔은 역설적이게도 전두환 신군부 언론통폐합조치로 방송국이 문을 닫으면서 37년 간 온전히 보존됐다.
군이 지상과 상공에서 총알을 퍼붓는 작전을 펼쳤다는 것은 대량 학살을 일으킨 금남로 집단발포가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헬기사격은 신군부 수뇌부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고, 숱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12·12 및 5·18사건' 재판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판명받지 못했다.
광주시 5·18진실규명 지원단 관계자는 "이번 분석 성과는 금남로 집단발포가 '자위권 발동'이라던 신군부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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