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기적의 첫 시작은 '공포의 삑삑이'

입력 2017-05-15 17:14
아이스하키 기적의 첫 시작은 '공포의 삑삑이'

진천선수촌서 11주 일정의 여름 체력훈련 시작



(진천=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주간의 휴식기 뒤에 맞는 첫날 체력 훈련이라서 살살 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공포의 삑삑이' 훈련은 기본이고 선수들은 100㎏ 바벨을 앞에 두고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였다.

아이스하키 불모지에서 꿈의 1부 리그(월드챔피언십) 승격이라는 기적을 이룬 '백지선호'가 더 큰 기적을 위해 달려가는 충북 진천선수촌을 15일 찾았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백지선(50·영어명 짐 팩)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에게 인상적인 말을 했다.

백 감독은 "다른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우리는 분명히 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느냐"고 말해 선수들의 뜨거운 환호를 불렀다.

대표팀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막을 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꿈의 1부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등록 선수 233명, 고등학교 팀 6개와 실업팀 3개에 불과한 한국 아이스하키가 이뤄낸 기적과도 같은 결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키예프의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백 감독은 동의하지 않았다. 첫날 훈련 강도가 백 감독의 자신감 넘치는 그 말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백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보였던 '셔틀런(왕복 달리기)' 체력 테스트를 시행했다.

'삑'하는 부저 소리에 맞춰 단계별로 짧아지는 기준 시간에 20m 거리를 오가는 훈련이다. '공포의 삑삑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수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첫날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지옥 훈련'을 접한 선수들은 말수를 잃어갔다.

지붕이 높은 실내테니스장은 '삑'하는 단속적인 기계음과 선수들의 지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셔틀런'을 통해 심폐 지구력과 회복 능력을 측정한 대표팀은 오후 훈련에서는 근력을 체크했다.

진천선수촌 체력훈련장 한 쪽에 60㎏, 80㎏, 100㎏ 역기 세 세트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

선수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벤치프레스(벤치에 누워 양손으로 덤벨을 반복해 들어 올리는 운동)로 60㎏ 바벨을 6번, 80㎏ 바벨을 3번, 100㎏ 바벨을 1번 드는 것이다.

2주간의 휴식기에도 불구하고 17명의 대표팀 선수 중에서 100㎏ 바벨을 10번 이상 들어 올린 선수가 5명이나 됐다.

지난해 이맘때 체력 테스트에서 100㎏ 바벨을 10번 이상 드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선수들은 너나없이 "하나만 더"를 외쳤다.

지난해 80㎏ 바벨도 못 들어 올렸던 체중 75㎏의 이영준은 100㎏ 바벨을 들어 올려 동료들의 장난기 넘치는 환호를 받았다.

진강호 대표팀 트레이너는 "1년 전 체력 훈련의 성과가 그대로 유지된 결과"라며 "선수들이 시즌 중에도 체력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대표팀의 여름 체력 훈련은 미국의 트레이닝전문업체인 엑소스(EXOS)가 아이스하키 선수들에 필요한 근력과 순발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 제작한 특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훈련 프로그램을 기초로 한 것으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시즌 동안 선수들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 여름 EXOS 프로그램을 소화한 선수 대부분은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 등에서 비약적인 상승을 보였다.

이는 '백지선호'가 2016년과 2017년 세계선수권에서 거푸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는 원동력이 됐다. 주먹구구식 체력 훈련이 아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체력을 다진 한국 선수들은 올해 대회에서 상대보다 더 오래 버텼고, 마지막 3피리어드에서 골을 몰아치며 5경기 중 2경기에서 역전승했다.

김상욱은 "링크에서 순간 스피드를 낼 때 큰 도움이 된다. 효과가 있어서 힘들어도 견디게 된다. 지구력도 향상되고 선수단 전체가 부상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조민호는 "체격 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을 우리가 3피리어드 내내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은 체력훈련의 효과 덕분"이라며 "몸싸움에서도 예전처럼 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돈구는 "링크장에 들어가서 스케이트를 오랜만에 탈 때도 힘든 느낌이 전혀 없다. 체력 운동이 확실히 도움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진천선수촌에서 7월 10일까지 지상 훈련을 소화한 뒤 11일부터 태릉선수촌에서 빙판 훈련을 병행한다. 11주간의 여름 체력 훈련을 마친 뒤에는 실전 경험 축적과 조직력 강화를 위해 곧바로 해외 전지훈련에 나설 계획이다.

대표팀은 7월 28일 출국, 러시아와 체코에 3주간 머물며 개인 기술과 팀 전술을 가다듬고 러시아 대륙간 아이스하키리그(KHL)와 엑스트라리가(체코 1부리그) 소속의 강팀을 상대로 연습 경기를 치르며 경험을 축적한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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