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개헌 질문에 "요미우리 읽어보라" 답변… '황제행세' 비판
기자회견 관례 깨고 '마음에 드는 매체만 인터뷰'…'자만심 극에 달해" 비판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5월 초 일본의 황금연휴 직후 국회 답변과정에서 나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발언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연휴 직후인 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집중심의에서 개헌에 대해 묻는 제1야당인 민진당의 나가쓰마 아키라(長妻昭) 의원이 질의에 대해 "자민당 총재로서의 생각은 5월 3일 자 요미우리 신문(인터뷰 기사)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아무쪼록 잘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국회경시라며 크게 반발했지만 아베 총리는 '총리'와 '자민당 총재'의 입장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버티며 야당의 추궁에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다음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렌호(蓮舫) 민진당 대표가 추궁했지만 "이 자리에서 자민당 총재로서 일개 정당의 생각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고 우겼다. 그러면서도 "우리 자민당은 결과를 내놓았다"며 당 대표로서의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아베 정권에 협력적인 군소야당인 '일본 유신회' 의원의 질의에는 제1야당의 약을 올리려는 듯 사뭇 공손한 자세로 답변했다.
당시 아베 총리와 설전을 벌였던 나가쓰마 의원은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마치 황제라도 된 듯 상식을 벗어난 태도"라고 비판하고 "뭐든 '내가 말하면 된다'고 과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와 여러 차례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 나가쓰마 의원은 "아베 총리가 요즘 이상한 요령을 터득했다"고 지적했다.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그러다 야유가 나오면 그 야유를 길게 반박하면서 시간을 번 다음 "그러니까 민진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라는 식으로 어느 틈엔가 야당비판으로 바꿔치기해 야당의 추궁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그게 날로 심해져 하늘을 찌르는 지경이 되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지율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미신 같은 확신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그렇게 된 건 우리의 책임"이라고 자책했다.
아베 총리가 민진당 비판을 즐기며 흡족해할 수 있게 만든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높은 내각지지율이다. 아베 총리는 4월에도 국회 답변에서 NHK 여론조사를 끄집어내며 "내각지지율은 53%, 자민당과 민진당 지지율은 다 아시지 않느냐"고 비꼬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사히(朝日)신문은 12일 아베 총리의 자만심이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국유지 헐값매각과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모리토모(森友)학원 관련 스캔들의 진상규명이나 원전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다른 많은 여론조사결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에게 유리한 지지율 숫자에 교만해져 약한 야당을 조롱하는 그야말로 독재자의 처신을 보노라면 약해져 가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더해질 뿐이라도 강조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 일본의 역대 총리는 특정 언론의 단독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기지회견에서 여러 언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게 내각기자클럽의 관례였다면서 아베 2차 내각 출범 후 이런 관행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총리가 특정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관행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일부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에만 응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스즈키 히데미 게이오(慶應)대학 교수(헌법, 미디어법)는 이에 대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총리가 일방적으로 의견을 밝히기만 하고 비판적인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미디어를 고르는 건 비민주적인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미우리신문도 총리의 미디어 전략에 호응해 이용당하고 있다"면서 "언론기관으로서 권력감시 역할을 하기는커녕 정권에 협력해 한몸이 됐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lhy501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