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폐지된 국정교과서, 검정 보완도 신경 써야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대선 기간에 공약한 대로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취임 후 두 번째 업무지시였다. 그만큼 국정교과서를 아주 시급히 청산해야 할 문제로 여겼다고 볼 수 있다. 교육 현장에는 2018년부터 국·검정교과서 혼용체제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국정 폐지로 현행 검정교과서 체제를 그냥 유지할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0월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이래 숱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초래한 국정교과서는 결국 학교에서 한번 쓰이지도 못하고 사라지게 됐다.
국정교과서는 처음 추진될 때부터 역사 해석이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될 수 있고, 교과서 자유 발행제를 채택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기존 검정교과서에 이념적 편향이 있다며 국정교과서를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보수 진영에서는 일부 검정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비하한다는 주장을 펴며 정부에 힘을 실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심해졌고 큰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다수의 역사학자가 국정교과서 집필 참여를 거부하는 바람에 교과서 내용마저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육부는 궁여지책으로 올해부터 연구학교 신청을 받아 국정교과서를 시범적으로 사용하게 할 계획이었으나 신청 학교가 고교 1곳에 그쳤다. 이 학교도 법원 결정으로 실제 수업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출발부터 순리를 따르지 않은 국정교과서는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다가 폐지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브리핑에서 "역사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 대변인은 "국정교과서로 인한 그동안의 교육 혼란에 종지부를 찍게 돼 긍정적"이라며 "국정교과서가 사실상 퇴출당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 문제를 확고히 정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행 검정체제에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 검정교과서에서 논란이 돼온 이념적 편향과 역사적 오류를 철저히 검증하고 바로잡아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로 만드는 검정교과서의 경우 준비 기간이 짧아 졸속으로 제작될 우려도 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이 이참에 교과서 발행체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역사 문제를 단일교과서에 담는다면 보수든, 진보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기술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역사 문제는 사안에 따라 언제든 좌우편향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담은 보조교재를 활용하는 것도 선택 폭을 넓히는 방안이 된다고 본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교과서는 정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웠다. 우리 사회가 이 교훈을 위해 너무나 큰 비용을 치렀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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