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면하는 방법'…미국서 트럼프 파면 논의 다시 비등

입력 2017-05-13 07:00
수정 2017-05-13 11:02
'트럼프 파면하는 방법'…미국서 트럼프 파면 논의 다시 비등

"정신적 문제로 파면할 수 있는 헌법조항 발동보다 탄핵 현실성이 커"

내년 중간 선거서 민주당이 하원 장악하면 탄핵 바퀴 구른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권력의 비밀은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다. 진짜 비밀은 권력은 (평가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생 공적 의무도 없고, 눈치 봐야 할 이사회도 없는 가족 기업을 경영하다가 대통령이 되면서 갑작스레 이런 '평가'에 노출되자 불같이 화를 내는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비판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박탈할 힘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미국의 월간 뉴요커가 8일(현지시간) 최신호에서 정치인, 법학자, 정치학자 등의 말을 빌려 전했다.

제임스 피프너 조지메이슨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를 탄핵하는 방법'이란 이 기사에서 임기 중 탄핵 위기를 겪은 닉슨, 레이건, 클린턴 전 대통령들의 위기 대응에서 공통점은 "위험스러운 종류의 확신" 곧 자신마저 속이는 합리화로, "내가 잘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닉슨은 자신의 정적들도 자신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했고, 레이건은 의회와 국민의 반대를 피해 몰래 인질 석방 대가로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것은 이란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비용이었을 뿐이라고 여겼다. 클린턴은 교묘한 자신의 증언이 기술적으론 거짓말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이런 합리화의 심리로 인해 이들은 사건 초기에 잘못을 시인했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더 큰 손실을 보는 길로 갔다"고 피프너 교수는 설명했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전격 경질을 계기로, 한동안 뜸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미국 언론들이 다시 왁자지껄하다.

트럼프가 탄핵 쪽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더 큰 논란과 잠재적으론 탄핵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구르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등의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의원 중엔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북한 압박용으로 애용한 문구를 활용, 탄핵이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하원 공화당 선거본부 격인 전국공화당의회위원회(NRCC)는 "탄핵을 요구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우리의 대통령을 지키자"며 2018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의 하원 장악을 막기 위한 선거자금 기부를 독려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뉴스위크는 코미의 해임이 러시아 해킹 연루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만일 특별검사가 임명되는 날이면 탄핵의 길로 들어선 것임을 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의혹 관련 수사 진행 상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코미를 해임한 것으로 드러나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의 코미 해임은 닉슨이나 클린턴처럼 뭔가를 감추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이미 주고 있다.

뉴요커의 '트럼프를 파면하는 방법'은 트럼프 친구, 보좌관, 탄핵 절차 참여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상·하 의원, 의사, 역사학자, 정보기관 관계자 등 수십 명과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파면 방법론에 대한 미국사회의 논의를 망라한 것이다.

결론은 "이변이 없는 한 현 상태론 임기 중 파면 가능성이 멀지만…트럼프에 관한 한 정상적인 것은 없다"이다.

뉴요커는 "취재원 일부는 대통령직에 대한 각종 법률과 정치제도의 보호망을 트럼프 비판자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일부는 트럼프 파멸의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그러나 트럼프가 전임자들과 달리 자신이 안고 있는 정치적, 법률적, 개인적 위험을 더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엔 두 부류가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론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동맹이나 우방들의 정치 불안을 걱정해왔으나, 이제는 미국의 우방들이 가령 대북 정책 등을 두고 미국의 정치 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트럼프 요새"에 틀어박혀 사는 형국이라고 그의 한 보좌관은 뉴요커와 인터뷰에서 묘사했다. 반트럼프 시위대가 들끓는 껄끄러운 세계에서 절연된 백악관과 개인 소유 고급휴양지 마라라고만 오가는 폐쇄된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요새엔 "어떤 문제에 대해서건, 어떤 이유에서건 트럼프가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자제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공화당 전략가인 스티브 슈미트는 말했다.

특히 달갑지 않은 세상 소식과 절연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뉴스맥스 최고경영자로 트럼프의 오랜 친구인 크리스토퍼 러드는 최근 백악관과 마라라고에서 트럼프와 대화해 보니 트럼프 보좌관 일부는 트럼프를 불쾌하게 만드는 뉴스를 보고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감을 받았다. '대통령이 이걸 알아야 하는데 대신 말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도 이미 여러 차례 받았다"

다음은 뉴요커가 꼽은 트럼프 파면 가능성 요인들이다.

▲수정헌법 25조 4항 발동

뉴요커는 트럼프 파면 수단으로서 이 조항의 타당성에 대해 "리버럴(진보층)의 환상"이라고 일축하는 측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임기 내 발동 가능한 "전적으로 타당한 수단"이라는 측으로 나뉘고 있지만 "실제론, 트럼프가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이 조항 발동은 헌정 쿠데타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현실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케네디 암살을 계기로 1967년 신설된 수정헌법 제25조 4항은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고 부통령이나 내각의 다수, 혹은 의회에 의해 임명된 의료진 등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면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도록 했다. 신체적으론 불능 상태가 아니라도 정신적으로 불능 상태일 때 적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딱 한 차례 이 조항의 발동이 검토된 적이 있다. 1987년 당시 76세이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란-콘트라 사건 위기 속에 집무실에 출근하려 하지도 않고 짧은 보고서마저 읽지 않으면서 그저 관저에서 영화나 텔레비전에만 몰두하는 행태를 보였다.

어느 날 심야에 하워드 베이커 당시 비서실장이 자신의 집으로 소수 보좌진을 소집한 자리에서 이 조항의 발동을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베이커 실장은 이튿날 점심 시간에 레이건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레이건은 퇴임 4년 후인 1993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으나 그의 주치의들은 임기 중엔 그런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2015년 한 연구에서 레이건의 기자회견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특정 명사를 써야 할 자리에 '그것' '이것'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변화가 있었음을 발견했으나,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판단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트럼프와 관련해선, 5만여 명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기엔 정신적으로 너무 심각하게 병들었다"며 그의 파면을 요청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하버드 의대 임상 정신의학 조교수 출신의 랜드 도즈 등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적개심의 자기애'라고 진단했다. "트럼프는 타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굴복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간주, 편집증적인 분노를 폭발시키는데, 전쟁은 이렇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듀크 의대의 명예교수 앨런 프란시스는 "트럼프가 세계 정상급 자아도취 자일 수는 있지만, 정신 질환에 해당하는 징후는 없다"고 반박했다.

정신 질환 여부가 아니라 위험스러운 성격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공개적으로 폭력을 자랑하고 폭력 행사를 위협하고 고문을 인정하고 성폭행을 저질러도 탈이 없었다고 자랑하는 성향의 보유자라면, 미 공군에서 핵무기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장교가 거쳐야 하는 재정·인성·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할 것이라는 것이다.

수정헌법상 직무 불능의 기준은 "의학적이거나 기타 기술적 게 아니라, 상식적인 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버드대 헌법학 교수 로런스 트라이브는 해석하면서 "대통령 권한과 직무 성격의 한계에 대한 총체적이고 병리학적인 부주의나 무관심 혹은 이해력 부족"을 그 표식으로 거론했다.

지난달 11일 미해군 핵 항공모함 칼빈슨이 당시엔 북한에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고 트럼프가 말한 게 병리학적 부주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탄핵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반역, 뇌물, 기타 중대 범죄 및 비행'이라는 탄핵 사유 가운데 '중대 범죄'에 대해 "권한 남용, 배덕, 헌법 훼손 등으로 '국민의 신임(public trust)'을 어긴" 경우로 설명했다고 뉴요커는 말했다. 형법상 불법 행위가 없어도 탄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또 미국의 대통령 탄핵 역사를 통해 "탄핵은 사법 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는 수단"이라는 점이 확립됐다고 말했다. 탄핵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권남용 등 비행의 사실적 증거가 아니라 정치적 지지도이며, 그다음은 소속 당과 관계, 의회와 관계, 그리고 비행의 성격 순이라고 노스캐롤라이나대의 마이클 게하트 헌법학 교수는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하원에서 탄핵되고 상원의 파면 결정 직전 사퇴한 닉슨의 사례는 2가지 결정적 실수를 통해 후대에 교훈을 남겼다.

우선, 도청 사건이 터졌을 때 닉슨은 자신의 권력에 가해지는 위협을 과소평가했다. 탄핵까지 여러 단계에서 연루자들을 해임하는 등으로 사건을 털고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었으나 지지층이 의혹을 믿지 않으리라 과신하는 바람에 이들 기회를 놓쳤다.

2번째 실수는 3권분립의 원칙상 동등한 사법부를 농락했다.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는 고등법원의 명령을 9개월이나 거부하고 특별검사도 쫓아내는 등 미국의 기본적인 헌정체제를 위협했다. 결국, 대법원의 결정에 따르긴 했지만 이미 내상은 깊어졌고 하원 법사위의 탄핵 청문회가 개시된 뒤였다. 사법부에 대한 도전은 입법부 내 지지기반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빚었으며 국민은 그가 뭔가 감출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클린턴 탄핵에서도 2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위기에 빠지게 된 경로에 관한 것으로, 조사는 조사를 낳는다는 것이다. 1994년 클린턴 부부의 부동산투자 실패 사건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거의 5년 뒤 엉뚱하게 르윈스키 사건에 대한 조사로까지 이어져 하원에서 탄핵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통령이 일단 조사 대상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위기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기에 털어야 한다는 뜻이다.

클린턴 탄핵의 2번째 교훈은 위기 탈출법. 닉슨이 국민의 신임을 잃자 같은 당인 공화당 의원들도 닉슨을 버렸다는 게 클린턴 변호인단의 판단이었다. 변호인단은 탄핵 증거의 세부 사항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민주당 의원들과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는 전략을 짰다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 것을 갖고 공화당이 가하는 정략적 공격의 희생양으로 클린턴을 포장한 것이다. 클린턴은 하원에서 탄핵당했으나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상원에서 파면을 면했다.

뉴요커는 트럼프가 탄핵에 직면하면 트럼프 변호인단도 트럼프를 정쟁의 희생양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쓰려 하겠지만, 문제는 국민 지지도가 낮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민주당으로서도 탄핵 추진 때 조심해야 할 점은 "'이빨과 발톱을 벌건 피로 물들인' 분노를 드러내기 보다는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뉴요커는 탄핵 역사 전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뉴요커는 내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자리를 탈환하느냐 여부가 트럼프 탄핵 추진의 현실화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봤다. 과거 중간 선거의 사례나 트럼프의 지지도를 고려할 때 공화당의 다수당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면 법사위의 조사소위부터 시작해 트럼프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한 의회의 조사가 시작되고 그렇게 되면 탄핵의 바퀴가 굴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경우 가장 타당한 탄핵 사유는 부패와 권한 남용이 될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예상한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개별적으론 기소할 정도는 안 되는 사소한 사안이더라도, 비슷한 유형의 사안이 중첩되는 패턴이 드러나면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권한 남용의 경우도 트럼프는 이미 행정명령 과정에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등 미국의 헌법상 경계를 침범하는 닉슨식 패턴이 누적되고 있다고 뉴요커는 지적했다. "헌법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요커는 트럼프의 당면한 위험은 헌법 25조 4항이나 탄핵 절차에 의해 파면되는 게 아니라, 낮은 국민 지지와 불신이 계속될 경우 임기 내내 파행하다 단임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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