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태권도 10년 만의 방한…남북교류 활성화 마중물 될까

입력 2017-05-22 15:38
북한태권도 10년 만의 방한…남북교류 활성화 마중물 될까

내달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에 북한 주도 ITF 시범단 파견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뿌리는 하나이지만 한국과 북한을 축으로 두 갈래 길을 걸어온 태권도가 남북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다.

22일 세계태권도연맹(WTF)에 따르면 오는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리는 2017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국제태권도연맹(ITF)이 태권도 시범단을 보내기로 했다. WTF가 초청하고 ITF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WTF는 한국, ITF는 북한 주도로 발전해온 태권도 종목의 국제경기단체다.

ITF는 WTF보다 7년 앞선 1966년 서울에서 육군 소장 출신인 고(故) 최홍희 씨 주도로 창설됐다. 이후 최홍희 씨가 한국 정부와 갈등으로 캐나다로 망명하고, 1980년부터 태권도 보급을 위해 북한에 사범들을 파견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쌓아 'ITF는 북한 태권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2002년 최홍희 초대총재 사망 후 ITF는 북한의 장웅 전 총재가 맡은 조직과 최홍희 씨의 아들인 최중화 씨가 따로 만든 조직, 베트남계 캐나다인 고 트란 트리유 콴이 만든 조직 등으로 분열됐다.

그동안 WTF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장웅 전 총재가 이끄는 쪽을 협력 파트너로 삼아왔다.

WTF와 ITF는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기간 두 단체의 행정 및 기술통합문제를 다룰 '태권도통합조정위원회' 구성에 대해 합의하고 2007년부터 실무 회의를 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제 길을 걸어와 겨루기나 품새의 기본 틀마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기술적 통합은 힘들다는 한계에 직면했다.

결국,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통합안을 내놓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2014년 8월 두 연맹 수장이 합의의정서를 맺으면서 일대 전환점이 됐다.

조정원 WTF 총재와 당시 ITF 총재인 장웅 IOC 위원은 2014년 8월 중국 난징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호 인정과 존중, 양 단체 주관 대회 및 행사 교차출전, ITF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추진, 다국적 시범단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의정서에 서명했다.

두 단체는 이전까지의 선언적, 기계적 통합 노력에서 벗어나 실질적 교류 및 협력에 뜻을 같이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회식에서 ITF 시범단이 시범공연을 펼쳤다. WTF 주관 대회 역사상 ITF 시범단이 시범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그해 10월에 WTF가 ITF 시범단을 서울로 초청하려 했으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위협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불발됐다.

교착상태에 빠진 듯했던 시범단 교차방문은 현지시간 지난 3일 스위스 로잔에서 조정원 총재, ITF의 리용선 총재와 장웅 명예총재가 만나 양 단체의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다시 급물살을 탔다. 그러고는 마침내 ITF 시범단의 무주 방문이라는 결실을 내놓았다.

2002년 대한태권도협회는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9월 시범단을 북한에 파견,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두 차례 공연하고 남북 태권도 교류의 첫걸음을 뗐다.

같은 해 10월 황봉영 조선태권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시범단이 답방 형식으로 서울을 찾아 두 차례 시범공연을 선보였다.

2007년에는 ITF 태권도협회가 남한에서 사단법인 등록을 마친 것을 축하하고자 장웅 총재를 비롯한 ITF 시범단이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해 춘천과 서울에서 시범공연을 했다.

방한 신청 및 정부의 승인 절차를 마치면 ITF 시범단은 10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한국에서 열린 WTF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방한할 ITF 시범단에는 북한 국적 외에도 미국, 영국,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 그린란드 선수들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ITF 시범단의 방한으로 오는 9월 평양에서 열릴 I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때 WTF 시범단의 방북 시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체육 분야는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일 때도 특별한 소통의 장이 됐다.

당장 지난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여자 축구 대표팀이 북한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강릉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며 교류를 이어갔다.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 여부도 관심사다.

주로 대북 강경 정책을 구사한 보수 정권이 막을 내리고 '햇볕 정책'을 계승하는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남북 체육 교류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제경기단체를 매개로 한 것이긴 하지만 ITF 시범단의 방한은 새 정부 출범 후 첫 남북 체육 교류 사례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hosu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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