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의 생명과 평화, 병아리 키우며 그렸죠"
권정생 10주기…'빼떼기' 그림책 펴낸 김환영 작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권정생 문학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생명과 평화. 불에 덴 병아리 '빼떼기'처럼 어떤 생명체도 도움이나 위로 없이는 살아가지 못해요.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빼떼기가 죽지도 않았을 거고요."
작가 김환영(58)이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의 동화 '빼떼기'를 그림책으로 그려 펴냈다. '빼떼기'는 작품집 '바닷가 아이들'(1988)에 수록된 단편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아궁이에 뛰어들었다가 겨우 목숨만 건진 검정색 병아리 '빼떼기'의 가슴 아픈 일생을 담은 이야기다. 불에 데는 바람에 부리가 문드러지고 발가락도 떨어져 나가 빼딱빼딱 걷는다고 해서 빼떼기다.
"선생님 생전에 작업을 시작했는데 10주기에야 완성이 됐네요."
'빼떼기' 작업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빼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어 경북 안동으로 권정생을 찾아갔다. 권정생은 흔쾌히 허락하고 닭장이며 초가삼간의 생김새, 동화 속 순진이네 식구가 빼떼기에게 지어 입혀준 옷의 모양까지 스케치북에 슥슥 그려줬다고 한다.
밑그림은 금세 완성됐다. 황선미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닭을 그린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자라고 생활해 닭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탓에 동화 속 풍경들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 같았다. 병아리를 데려와 닭으로 키우고 부화시키며, 그들의 삶을 함께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닭이 200마리까지 불어나 당시 경기 가평 집은 양계장 수준이 됐다. 작가는 지금도 충남 보령에서 병아리를 키우며 산다.
권정생은 '빼떼기' 앞부분에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썼다.
빼떼기는 크게 다친 탓에 어미 닭도 제 새끼인 줄 알아보지 못해 부리로 쪼고 다른 병아리들은 무서운지 피한다. 순진이네 식구들은 빼떼기를 버리지 않고 애지중지 키우지만 전쟁이 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잡아먹고 만다.
'빼떼기'는 짧은 이야기지만 다층적인 텍스트라고 작가는 말했다.
"빼떼기라는 작은 생명체의 일대기죠. 순진이네의 사랑이 없었으면 이야기가 탄생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사람들이 잡아먹는 이유는 전쟁 때문이고요. 장애에 대한 차별과 배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어요."
권정생 10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도 여럿 준비됐다. 대전 계룡문고는 2일부터 권정생 유품을 모은 전시 '보고싶은 권정생'을 열고 있다. 기일인 17일 오전 11시에는 경북 안동시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추모식과 함께 권정생 창작기금 수여식이 열린다. 김환영 작가는 12일부터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빼떼기' 원화 33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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