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한때 제 연기에 치열함 부족해 반성 많이 했죠"

입력 2017-05-10 16:09
수정 2017-05-10 16:30
설경구 "한때 제 연기에 치열함 부족해 반성 많이 했죠"

칸영화제 비경쟁 초청작 '불한당'에서 카리스마 연기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때 제 연기가 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죠."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49)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반성의 말부터 꺼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002), '실미도'(2003) 등에 출연하며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꼽혔던 그가 '쉽게' 연기를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가장 치열하게 찍은 작품은 '역도산'(2004)이었습니다. 당시 몸이 너무 고단했고, 일본어 대사까지 해야 해서 머리까지 복잡했죠.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때는 이창동 감독님이 너무 치열하게 몰아붙여 제가 치열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쭉 살다 보니 2000년대 중반쯤 되니까 힘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 쉽게 쉽게 가려고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설경구는 최근 몇 년간 '루시드 드림'(2017), '서부전선'(2015), '나의 독재자'(2014), '소원'(2013) 등의 작품에 쉬지 않고 출연했지만, 연기력이나 흥행 면에서 예전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은 여러 면에서 전환점이 됐다.

'불한당'은 범죄조직의 일인자를 꿈꾸는 재호(설경구 분)와 범죄조직을 잡으러 교도소에 들어온 비밀경찰 현수(임시완 분)의 우정과 배신 등을 그린 액션 누아르다. 로맨틱코미디 '나의 PS파트너'(2012)를 찍은 변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로맨틱코미디를 찍은 감독이 어떻게 누아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또 '신세계'와 '무간도', '검사외전', 그리고 당시 크랭크인을 앞뒀던 '프리즌'과 결은 다르지만 결국은 비슷한 언더커버(비밀경찰) 이야기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도 됐죠."

그러나 감독의 열정에 반해 출연을 결정했다. 변 감독은 설경구에게 '그동안 너무 구겨져 있었는데, 이번 영화로 빳빳하게 펴 드리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이 작품은 설경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됐다.

"변 감독뿐만 아니라 촬영·미술감독 등 주요 스태프가 모두 젊은 친구들이었요. 경험은 많지 않지만, 영화밖에 모르는 친구들이 모여 치열하게 작업하는 모습이 마치 공부는 못하지만, 무엇인가에 확 빠져있는 고등학생 무리처럼 보이더라고요. 미친 듯이 영화에 파고드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 직전에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하반기 개봉 예정)을 찍으면서 혹독한 살 빼기로 자신을 다잡았다는 설경구는 '불한당'에서 신선한 자극을 바탕으로 전성기 못지않은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재호는 사람을 절대 믿지 않지만, 유일하게 현수에게만 마음을 여는 인물이다.

"남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재호가 유일하게 믿었던 놈이 하필 경찰 현수였던 거죠. 마음속으로 연인까지는 아니지만, 브로맨스보다 더 깊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찍었습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임시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시완이 그 친구도 보통은 아니에요. 영화를 찍다가 안 풀리면 새벽 3∼4시에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연기할까요?'라며 전화기에 대고 연기를 했다니까요."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불한당'은 이달 17일 개막하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설경구는 영화 '박하사탕' (감독주간), '오아시스'(국제비평가협회 특별초청작), 한국·프랑스 합작영화 '여행자'(2009·스페셜 스크리닝)에 이어 이번 작품으로 네 번째로 칸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제가 영화를 찍기만 하면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던 때가 있었죠. 하하. 전수일 감독님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가 베니스영화제 '새로운 분야'에 초청받았을 때는 베니스가 너무 멀다며 안가기도 했어요. 그러다 한동안 영화제에 못 가니까 후회가 됐죠. '불한당'은 상업영화라서 초청받을 줄은 몰랐는데, 좋게 봐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오랜만에 칸에 가게 된 만큼 레드카펫도 밟고 즐기다 오겠습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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