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시대] 폐기 수순 밟게 된 국정 역사교과서

입력 2017-05-10 11:32
[국민통합시대] 폐기 수순 밟게 된 국정 역사교과서

文대통령, 국정교과서 폐기·교과서 자유발행제 공약

역사교과서 국정화 금지법 가능성도…검정교과서 제작은 '안갯속'

(세종=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올해 1월 말 최종본이 나온 국정 역사교과서가 불과 석 달여 만에 완전한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이미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불발로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쓰이지는 못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 정권의 '적폐'로 규정하고 아예 폐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기 때문이다.

새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해 만들어질 검정 역사·한국사 교과서의 제작 일정 역시 기존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을 보면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의 적폐 청산을 위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청산·방위사업 비리 척결 등과 함께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역사교과서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국정화를 금지하고, 교육과정개정위원회를 설치해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국·검·인정 결정의 민주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헌법 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중·고교 입시와 관련 없는 과목부터 점진적으로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0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고 곧바로 집필에 착수했다.

교육부가 총대를 멨지만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과제라는 인상이 짙어 교육 현장은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집필진 명단과 편찬기준이 이듬해 11월 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온 시점에야 공개되면서 '불통'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국정화 추진 동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교육부는 결국 지난해 12월 '2017년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쓰도록 한다'는 당초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3월부터 희망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교과서를 시범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다.



일선 학교들은 2018년 3월부터는 국정과 검정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공모 결과 연구학교는 한 곳에 그쳤고, 이 학교마저도 국정교과서 사용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실제로 수업에서 교과서를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경산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처분에 대한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에 불복해 경북도교육청이 낸 항고를 대구고법이 지난 2일 기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난 정부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킨 국정교과서를 완전히 폐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관련 법령 손질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 수정 고시'는 중학교 사회(역사①/②)와 고교 한국사 과목에 국정교과서를 두도록 했고,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은 학교장이 국·검정 가운데 하나의 교과서를 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전처럼 역사와 한국사 과목의 교육이 검정도서를 바탕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할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예상이다.

이와 별도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별도의 법률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역사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이 계류돼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계와 출판업계에서는 새 교육과정을 반영한 검정 역사·한국사 교과서 개발 일정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집필기준을 다시 손보고 교과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발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와 교육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사들은 2018학년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쓸 수 있도록 새 검정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검정에 필요한 '심사본' 제출기한은 8월 3일이다.

cind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