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선] 4강외교 재건'비상'…"그랜드 디자인부터 짜야"

입력 2017-05-10 00:25
수정 2017-05-10 00:28
[문재인 당선] 4강외교 재건'비상'…"그랜드 디자인부터 짜야"

한미 대북정책 틈없이 조율하며 '이익기반' 美 동맹관에 대처해야

"중국과 사드 넘어 '포괄적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 형성 필요"

"위안부 합의 국내여론 충분히 들은 뒤 한일정상회담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문재인 정부의 대(對) 4강(미·중·일·러) 외교는 '재건'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새롭게 판을 짜야 할 상황이다.

문 당선인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공조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신뢰를 구축하는 한편,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연역적 접근법'을 강조했다. 4강 각국과의 개별 외교관계를 풀어가기에 앞서 새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동북아국장 출신인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사안별 대증요법으로는 안 되고, 큰 그림을 우선 제대로 그려야 한다"며 "대외 전략의 기본 축, 즉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 큰 구상)' 하에서 4강 외교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대 박원곤 교수는 "새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정책을 조기에 재검토하는 것"이라며 "당선인은 후보 신분으로는 볼 수 없었던 비밀자료까지 접하게 될 것이니 외교 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새롭게 검토한 다음 각국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는 "'외교정책은 남북통일 지향적으로 전개한다'든가 '안보 문제에서는 양보없다'는 식으로 총론에 해당하는 외교·안보 정책의 대(大) 원칙을 세우되, 각론은 유연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4강 외교 중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최대의 안보 현안인 북핵 문제에서 철저한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사드 비용, 방위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민감한 동맹 현안들을 원만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관이 다른 부시 행정부와 갈등을 겪다가 풀어가는 과정이 있었지만,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실전배치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의 '틈'을 메우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여유가 없어 보인다. 대북 선제공격부터 김정은과의 정상회담까지 양 극단의 정책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트럼프 정부이기에 문재인 정부로서는 미국 정부의 북핵 해법이 '일탈'하지 않도록 정상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조율 채널을 구축해야 할 전망이다.

한미동맹 및 양국간 경제 관련 현안의 원만한 처리도 중요하다.

문 당선인이 몸담았던 노무현 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로부터 북핵에서 협조를 얻기 위해 내키지 않는 이라크 파병을 감수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등을 떠밀고,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 쪽으로 보내며 대북 억지력을 과시한 데 따른 트럼프 행정부의 '청구서'가 사드 비용청구,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한미 FTA 개정 압박으로 돌아올 경우 문 당선인은 미국과 국내 여론 사이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할 수 있다.

박원곤 교수는 "동맹국의 비용 부담을 늘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는 분명하기에 그에 정확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 지향적인 동맹이 아닌 이익 중심의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정책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새 정부가 '자주성'과 외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기개와 자존심을 강조하면 힘들어질 수 있다"며 "리스크를 관리하듯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관계는 사드 관련 보복을 중단시키는 것이 당면 현안이지만 그것을 넘어 미중간 전략 경쟁 및 협력 구도라는 큰 틀을 감안해가며 국익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미국이 군사 부문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중국이 경제력 방면에서 우위로 전환하는 시기에 미중 가운데 누가 더 강한지를 논의하면서 편승하려는 사고는 안이하다"며 '결미연중'(結美聯中, 미국과 결속하고 중국과 연대한다는 의미)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미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도 연대해 북핵 관련 공조를 하는 한편 전략적 경제 협력 공간은 확대하고, 미래 협력분야를 적극 개척해야 한다"며 한중관계를 '포괄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갈등 요인인 역사 인식 문제와 대북 안보 협력 사이에서 적절한 좌표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질주에 정상회담 거부로 맞서면서 한일관계는 장기간 표류했다. 2015년 12월 어렵게 도출된 위안부 합의는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표류 위기에 처해있고 지난해 말 부산 일본 총영사관앞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주한일본대사가 85일간 귀국하는 등 양국 관계는 삐걱대는 상황이다.

한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사죄와 배상을 할 생각이 없는 아베 정권을 상대로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것인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일단 계승함으로써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 및 안보 협력을 꾀할 것인지 사이에서 새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세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국내적 의견 수렴과 공감대 형성 작업이 먼저"라면서 "새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을 폭넓게 들은 뒤 일본 정부와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한일관계가 껄끄럽기 때문에 서둘러 정상회담부터 하자는 식이 되어선 안 된다"며 큰 틀에서의 외교 청사진 하에서 한일관계를 풀어 나갈 것을 주문했다.

미·중·일과의 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온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북핵 해결에 역할을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주 러시아대사관 공사참사관 경력의 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새 정부 하에서 제2의 북방외교가 필요하다"며 "북핵 문제와 남북통일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그간 중국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졌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김흥규 교수는 "러시아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태도로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한-러 전략 협력 강화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공영을 위한 기초를 다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법론 면에서 신 부장은 "빈번하게 한러 정상외교를 하고, 한번의 '보여주기식' 회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의제를 계속 관리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선, 한-러 협력을 한 단계 격상해 제도화하는 한편 고위 지도자급 회담을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북핵 및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의 파트너십 강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제면에서 한·러·일 3각 협력을 통한 '환(環) 동해' 협력체제 창출, 한·러 협력에 기초한 북-러 접경지대 개발, 한·중·러 3각 협력을 통한 북-중-러 접경지대 개발을 각각 가속화할 것을 제언했다.

jh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