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현장] 장애인 유권자 "모두 인간다운 사회 만들기를"
장애인단체 "사전투표소 18% 장애인 접근 못 해"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9일 전국 곳곳에서 장애인 유권자들도 집에서 가까운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이들은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투표소 때문에 투표 날마다 아직 부족한 장애인 복지를 실감한다면서, 차기 대통령에 장애인 복지 증진과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를 당부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56·지체장애 1급) 상임대표는 이날 오전 9시 30분께 강동구 강일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았다.
강일초등학교는 학교 출입문부터 기표소까지 조금 오르막이 있을 뿐 계단은 없었다. 다만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본인 확인 공간이 다소 비좁아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책상을 하나 빼야 했다.
박김 대표가 투표를 마치고 나올 무렵 역시 휠체어를 탄 진모(40·지체장애 4급)씨가 강일초에 도착했다. 초면인 두 사람은 투표소 위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선관위 직원들이 나와서 도와주는 모습은 없었다.
박김 대표는 "국민을 두려워할 것 같은, 국가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회 약자가 누군지 아는, 안 된다는 말보다는 되게 하려는 사람을 뽑았다"면서 "차기 정권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빨리 폐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서른 살 넘어서야 투표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가족들이 '넌 안 해도 돼, 너까지 뭘 가려고 해'라고 했다"면서 "내게 투표는 사치처럼 보였다. 그러다 서른 살 넘어서 '나도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첫 투표소에 계단이 너무 많아서 선관위 직원들이 나를 들어 올려서 옮겼다"고 했다.
박김 대표는 "사실 오늘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사전투표"라면서 "엘리베이터도 없이 2층이나 3층에 사전투표소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애인 보고 불편을 감수하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단체 모임 '2017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4∼5일 시행된 사전투표에서 전국 총 3천516개 투표소 중 18.3%에 달하는 644개 투표소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의 경우 424곳 중 37.7%인 160곳이 접근 불가능했다.
박김 대표와 같은 시간 종로구 이화동에서 투표한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학생 김명학(59·뇌병변장애 1급)씨는 사전투표소를 직접 찾았다가 투표를 못 하고 말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전투표 첫날 창신1동주민센터에 갔는데 투표소가 2층에 있고 보행로가 따로 없어 혼자 갈 수가 없었다"면서 "관계자가 나를 안아 올려서 옮기겠다 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김씨는 "기표소 하나를 임시로 1층으로 옮겨주겠다고도 하는 등 이런저런 배려를 해주셨지만 나는 유권자로서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투표하고 싶었다"면서 "특별대우하듯 나를 들어 올리거나 기표소를 옮기는 건 제대로 된 평등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씨가 찾은 투표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체육관은 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그가 투표할 수 있었다. 김씨는 투표소 안내 표지를 배경 삼아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인증샷을 찍고 투표했다. 그 역시 투표 후 인터뷰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강조했다.
김씨는 "나는 1급 장애인인데 부양가족과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일반 장애인으로 분류됐다"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인을 신청할 때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차기 대통령은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차기 대통령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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