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못챙기고 나와'…삼척산불 늑구1리 주민 '피난생활'

입력 2017-05-07 21:03
'약도 못챙기고 나와'…삼척산불 늑구1리 주민 '피난생활'

20여 가구 마을회관 등에 대피…밤새 진화 '사투'

(삼척=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자욱한 안개에 탄 냄새가 진동해 약도 못 챙기고 집을 빠져 나왔지요"

7일 오후 8시 강원 삼척시 도계읍 늑구1리 마을회관.



마을을 위협하는 화마를 피해 몸을 피한 이경작(76) 씨는 아직 뿌연 연기가 가득한 도계농공단지 뒷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평생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 씨는 마을을 둘러싼 경찰차와 소방차가 낯설기만 하다.

수십여 대의 경찰차와 소방차가 마을까지 불길이 번질까 봐 물 호스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늑구1리는 22가구에 약 30명이 산다.

주민은 도계읍 도계리에서 424번 지방도를 따라 건의령 올라가는 길목 등 넓은 지역에 퍼져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산불, 수해 등 재해로 대피한 적이 없는 마을이지만 이번에 때아닌 '피난민' 신세가 됐다.

지난 6일 오전 11시 40분께 인근 마을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마을과 족히 10km는 떨어져 있는 데다 금방 꺼지리라 생각했던 불길은 강풍을 타고 거세게 번졌다.

처음엔 바람도 마을 반대 방향으로 불었다.

그래도 불이 워낙 커서 대부분 주민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밝으면서 상황이 급변했고,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라는 연락이 왔다.

주민들은 아침밥도 못 챙기고 서둘러 몸만 빠져나왔다.

그러나 마음은 생활터전에서 떠나지 못했다.



주민 가운데 젊은층에 속하는 50∼60대는 진화대원과 함께 물을 뿌리며 집을 지켰다.

거동이 불편한 노장파는 마을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불이 빨리 꺼지길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불길도 잦아들자 상당수 주민은 집으로 향했다.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 심모(81) 씨는 "경찰과 소방차가 마을회관에 교대 근무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탓에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불이 난 마을(점리)이 우리 마을과 상당히 먼 거리인데 밤사이 마을 뒷산까지 번졌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 씨는 이웃 주민 박모(67) 씨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잠을 청할 예정이다.

삼척 도계읍 점리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현재까지 5-%가량 진화율을 보이는 등 상황이 좋지 못하다.

이른 아침부터 진화헬기 26대와 지상 인력 3천200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산불 확산지역이 고산지대인 데다 오후 들어 다시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길이 좀처럼 잡지 못한 탓이다.

일몰 이후에는 진화헬기가 모두 철수한 상태다.

야간에는 공무원과 진화대 340여 명의 지상 인력이 진화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강용희(61) 늑구1리 이장은 "오늘 밤도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다"라며 "주민 모두의 소망은 산불이 빨리 진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h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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