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많던' 中마카오·주하이 北식당들 어디로 갔나…"찾기어려워"

입력 2017-05-07 19:47
'그많던' 中마카오·주하이 北식당들 어디로 갔나…"찾기어려워"

SCMP 집중보도…BDA제재·김정은체제 이후 북중관계 악화가 흥망원인

(홍콩=연합뉴스) 최현석 특파원 = 북한 식당들이 한때 중국 마카오에서 성업했다가 쇠락하고, 다시 주하이(珠海)로 옮겨 성업(盛業)했으나 그마저도 자취를 감췄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7일 보도했다.

SCMP는 마카오와 주하이 소재 북한 식당 흥망사를 이같이 조명했다.

신문은 우선 마카오에서의 북한 식당 성업과 쇠락의 기점을 2005년 국제사회의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로 봤다.

신문은 방코델타아시아 제재 이전엔 마카오에서 북한의 기업들은 물론 식당들이 번성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마카오에서의 북한 당국과 기업들의 활동을 관대하게 대한 탓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6자회담이 한 걸음 진보했던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9·19공동성명) 직후 미국이 북한과의 불법금융거래를 이유로 BDA에 제재를 결정함으로써 북한 당국의 불법활동은 물론 기업·식당의 영업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SCMP는 마카오의 북한 주민들은 미국이 2005년 마카오 BDA를 북한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제재하면서 자금 거래가 어려워지자 마카오와 인접한 중국 본토의 주하이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주하이는 중국의 급속성장을 가능케 했던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1991년 소련 연방과 동유럽 붕괴로 개혁개방 노선에 차질이 생기자, 1992년 1월 18일부터 2월22일까지 주하이 이외에 선전(深천<土+川>), 상하이(上海) 등 중국 남부지역을 시찰하고 담화를 발표했다. 바로 '남순강화(南巡講話)'였다. 이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로서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결단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 주요 인사들에게 중국의 첫 경제특구인 주하이 방문을 권유하면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6년 9일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주하이에 들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생존했을 때 주하이에서 북한 식당들은 번창했다.

그러나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데 이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고, 중국에서는 2012년 말 제18차 당대회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집권하고 북중 관계에 이상 기류가 흐르면서 주하이의 북한 식당들도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SCMP는 실제 사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하이를 방문한 뒤 주하이의 샹저우(香洲)구 하이완법원 부근에 조선광선은행의 지점도 입주했고, 같은 건물에 북한 최고위층의 친척으로 마카오에 거주했던 60대 여성이 소유한 북한 식당이 차려져 광저우(廣州) 주재 북한 총영사도 찾고 한국사람들도 자주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2015년 5월 폐업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주하이의 또다른 북한 식당 2곳도 이미 폐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도 주하이의 북한 식당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썼다.

스티브 청 홍콩중문대 보조강사는 "많은 국가들이 김정남 암살 이후 북한의 불법 활동을 눈감아주기 어려워울 것"이라며 "북한에 우호적이거나 강한 이견이 없던 국가들도 강경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기업가가 해외 무역 네트워크를 복원하려면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홍콩 정치 평론가인 소니 로는 "주하이가 더이상 북한의 사업 확장을 위한 유일한 선택권이 아니기 때문에 주하이의 중요성이 줄었다"고 말했다

SCMP는 한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북한 식당 이용을 자제토록 한 것도 북한 식당의 쇠락을 부른 요인이라고 보도했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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