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 양팽손의 그림일까"…日서 500년전 조선 산수화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6세기 산수도와 크기·화풍 유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전기 사대부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은 진정 뛰어난 문인화가였을까.
미술사학계의 오래된 논쟁거리인 양팽손 '전칭작'(傳稱作,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단서가 될 16세기 초반 조선 산수도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이 그림은 양팽손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16세기 산수도와 크기가 거의 같고, 구도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화풍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두 작품에는 모두 '학포'(學圃)라는 인물이 쓴 글이 남아 있다.
중국미술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일본 나라(奈良) 현의 야마토(大和) 문화관에서 열린 '조선의 회화와 공예' 특별전에 학포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산수도가 출품됐다고 7일 밝혔다.
일본인이 소유한 새로운 산수도에는 학포가 쓴 "산사는 산간에 어슴푸레 보이고/ 돛배는 큰 강의 수면에 떠 있다/ 어선은 빨리 정박하면/ 풍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시가 있다.
이 그림은 가로 56.7㎝, 세로 88.7㎝ 크기다. 가로 46.7㎝, 세로 88.2㎝인 국립중앙박물관의 16세기 산수도와 비슷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산수도가 왼쪽으로 치우친 구도라면, 일본에서 발견된 산수도는 풍경이 오른쪽에 쏠려 있다.
한국과 중국 회화사 연구자인 이타쿠라 마사아키(板倉聖哲)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는 전시 도록에서 "두 그림은 화풍뿐만 아니라 서체, 인장까지 일치하고 있어 동일 화가의 작품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과연 학포 양팽손인지 아닌지다. 학포 양팽손은 조광조(1482∼1519)의 친구로 1516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해 은둔 생활을 했다는 인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산수도는 양팽손이 그림과 글을 모두 제작했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그림은 16세기에 그려졌고 글은 18세기에 '학포'라는 호를 사용한 또 다른 인물이 썼다는 주장도 있다.
작년 전시에서 그림을 직접 살펴본 장진성 서울대 교수는 "두 그림의 글씨와 인장을 비교 연구하면 학포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16세기 산수도가 학포의 작품이 아니라고 보는 학자들은 분위기가 엄격했던 조선 전기에 사대부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며 "이번에 새로운 그림이 나오면서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산수도가 학포 논쟁과는 관계없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조선 전기 회화는 상당수가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이고, 감상용으로 그린 산수도는 거의 없다"며 "이번에 발견된 산수도는 크기도 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산수도보다 상태가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됐다는 조선 회화 중 믿을 만한 작품은 국내외에 약 100건만 남아 있다"며 "1530∼155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조선시대 전기 회화 연구에서 가치 있는 자료로, 해외 문화재 환수 차원에서 국내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 화풍의 영향이 느껴진다"며 "조선 전기에는 중국에서 넘어온 풍경화 주제인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유행했는데, 이 그림에서도 소상팔경도의 여러 요소가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 대표는 "새로운 산수도가 국내에 올 수 있도록 소장자를 설득하고 있다"며 "국립중앙박물관 그림과 함께 전시된다면 매우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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