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는 대법원서 21개월째 재판 중…'늑장 판결' 논란

입력 2017-05-08 07:01
군수는 대법원서 21개월째 재판 중…'늑장 판결' 논란

선거법 위반 혐의 정상혁 보은군수 확정 판결 '하세월'

"12개월 내 3심까지 끝내라는 법, 사법부가 되레 어겨"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 대법원이 21개월이 넘도록 확정판결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선거법 위반' 굴레를 쓰고 임기 3년을 보낸 정 군수는 이제 1년 남짓의 임기만 남겨두고 있다.

여전히 '피고인' 신분을 유지하는 정 군수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태도는 완전히 믿지도, 그렇다고 전면 부정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원칙 없는 '늑장 재판'이 사법 불신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죄가 있다면 조속히 군수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안정적으로 군정에 전념하도록 가부간의 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정 군수는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자신의 업적과 포부 등이 담긴 책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주민 4천900여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또 지역 주민 10명에게 모두 90만원의 축·부의금을 건넸다.

이게 문제가 되면서 그는 취임 6개월만인 2014년 1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흘렀지만, 정 군수의 재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정 군수는 1심에서 직위상실형인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직위를 유지할 수 있는 벌금 90만원으로 낮춰져 기사회생했다. 공직선거법상 선출직 공무원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게 된다.

1·2심이 진행되는 데는 8개월 정도 소요됐다.

이후 검찰과 정 군수 모두 상고해 2015년 8월 대법원으로 넘어간 이 사건은 21개월째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같은 해 9월 주심 대법관을 지정한 뒤 곧바로 법리 검토를 개시했다.



선고가 지연되던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법리·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 중'이라고 재판 상황을 알렸으나, 그 후로도 10개월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정 군수는 군수직이 걸린 절체절명의 재판을 치르느라 임기의 4분의 3을 훌쩍 넘겼다.

수장의 운명을 결정할 재판이 장기화하자 지역사회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군정을 지켜봐야 했다. 직위를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군수의 리더십에 한계도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280조는 선거 재판을 1심 6개월, 항소심 3개월, 상고심 3개월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정 군수와 비슷한 시기에 상대 후보를 비방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유영훈 전 충북 진천군수는 단 9개월 만에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선고는 3개월이 채 안 걸렸다.

2015년 10월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박경철 전 전북 익산시장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딱 1년이 소요됐다.

이와 비교하면 대법원에서 무려 21개월 계류 중인 정 군수의 확정판결 지연은 사뭇 대조적이다. 법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도리어 법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다퉈야 할 쟁점이 많은 재판의 경우 확정 판결까지 12개월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2014년 9월 사전선거운동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권선택 대전시장 재판도 정 군수와 마찬가지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권 시장의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거쳐 파기 환송된 이후 재차 대법원으로 넘어간 이례적인 경우다.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직위상실 위기에 놓인 권 시장은 지난 2월 말 대법원에 두 번째 상고장을 제출했다.

반면 정 군수의 사건은 권 시장과 같은 경우로 보기 어렵고, 다퉈야 할 쟁점도 복잡할 게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대법원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은 경우 일부 판결이 지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치단체장 재판을 무려 21개월이나 계류 상태로 놔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소송이 장기화하면 당사자가 겪는 고통이 가중되고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난다"며 "특히 직위 유지 여부에 따라 지자체의 행정 운용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자치단체장 사건는 조속히 종결하는 게 지역사회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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